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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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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35) 남강⑧-지리산 벽소령 ~ 칠선계곡

푸른 물, 부처의 미소, 전설… 눈과 귀가 즐겁구나

  • 기사입력 : 2008-07-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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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장승이 해맑은 미소를 보내는 실상사를 뒤로 하고 강을 따라 오리쯤 내려서면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을 가르는 이정표가 있다.

    유통산업의 발달로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마천면 5일장에 들어서면 실상사에서 듣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보다 지리산 산나물을 흥정하는 할머니들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역동성이 느껴진다.

    80년대까지 만해도 오지인 마천면 소재지는 백무동 계곡이나 벽소령, 칠선계곡을 통하여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는 출발지 역할을 했다. 한때는 신(神)만이 줄 수 있는 ‘젊음’이라는 건강이 있어 수없이 지리산을 오르내렸다.

    아름다운 산은 편리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수없이 파괴돼 가고 있다. 자연이 훼손되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제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는 중지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다. 자연은 그대로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 함양마천면 마애여래입상·벽소령계곡

    마천면 소재지에서 가흥교를 건너 백무동과 벽소령 가는 길을 따라 가면 마천초등학교가 있다. 학교 뒤쪽 길을 따라 200m쯤 가면 큰 바위에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 함양 마천면 마애여래입상(보물 제375호)이 있다. 고려초기 또는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높이가 5.8m나 되며, 어깨에서 다리 쪽으로 하얀 선이 길게 늘어져 있어 일부러 채색을 한 듯 신비스럽다. 예전에는 들꽃을 보며 걸어 올라가는 작은 즐거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차량을 위한 번듯한 주차장까지 만들어 놓았다.

    마애불은 넓적한 얼굴, 긴 눈, 큼직한 코, 굳게 다문 입 등에서 강직한 힘이 풍겨나고 입가에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자비로움도 느껴진다. 짧은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한 두 손은 매우 작아 전체적인 장중한 느낌과 대조를 이룬다. 원래 이곳에는 덕봉암이라는 다 쓰러져 가는 암자가 있었는데 근래 들어 고담사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주변을 가꾸고 있었다.

    마애불을 떠나 다시 마천초등학교에서 지리산 방향으로 가면 벽소령과 백무동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벽소령 방향으로 길을 재촉하면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있다는 문바위 부근 삼정리 하정마을에 오랫동안 변치 않는 인연이 있는 양은조(68·☏ 055-962-5603)씨가 있다. 산행이나 여행길에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는 것도 행복하지만, 좋은 인연을 맺은 사람이 있다면 그 행복은 몇 배가 된다.

    지금은 지리산 종주의 시작을 노고단 성삼재에서 출발을 하지만 당시에는 구례 화엄사에서 코재를 올라 노고단을 거쳐 뱀사골이나 연하천 대피소에서 쉬어 갔다. 날짜도 잊어버린 늦가을날 지리산 산행길에 벽소령에서 함양 마천 방향으로 하산했다. 날이 어두워져 마을이장 댁을 찾아갔고 그 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양은조씨도 이제는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듯이 나 또한 흐르는 세월을 비켜 설 재간이 없다. 벽소령 계곡을 흘러가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막걸리에 산나물을 안주 삼아 쉬기도 하고 지리산 이야기에 밤을 새우기도 하였던 추억이 있다. 언제나 찾아가도 항상 따뜻한 밥을 내놓는 변하지 않는 정성을 한없이 주고 있다.

    ◇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맑은 물이 사계절 흐르는 벽소령 계곡을 따라 오르면 지리산 휴양림과 영원사로 가는 갈림길이다. 곡예를 하듯이 산비탈을 절개하여 만들어 놓은 산길을 따라 이십리쯤 오르면 울창한 숲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한 곳에 영원사가 있다. 지리산 자락(해발 900m) 산중턱에 자리한 영원사는 통일신라시대 영원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한때는 너와로 이었던 100칸이 넘는 9채의 전각들로 웅장한 가람의 모습을 지녔을 만큼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영원사는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으로 가람이 완전 소실되어 지금은 몇 개 남은 주춧돌과 부도들로 웅장했던 옛 가람의 흔적만 더듬어 짐작할 뿐이다.

    영원사에서 남쪽으로 마주보이는 산중턱의 토굴에서 오랫동안 참선한 수도승 청매스님의 방광사리탑이 인근 숲속에 있다. 봄이면 절집을 감싸는 화려한 꽃들이 피어 옛 상흔은 찾아 볼 수 없다.

    영원사 뒤편으로 돌아 30분쯤 가면 삼정산(해발 1225m)이 있다. 정상에서 내려서면 지리산 주능선을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상무주암이다. 언제나 빗장을 굳게 걸고 있는 상무주암은 고려시대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기 위해 정혜결사를 조직했던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처음으로 문을 열어 수행을 한 곳이다. 구곡각운대사의 사리를 보존했다는 필단사리 3층 석탑도 유서 깊은 선풍을 말해주고 있다.

    100m쯤 잡목이 우거진 오솔길을 내려서면 문수암이다. 문수암에는 1984년부터 도봉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몇 년 전에 학생 60여명과 문수암을 거쳐 삼정산으로 가는 길에 점심을 먹기 위해 머물렀는데 손수 따뜻한 오미차 차를 끓여 주셨다. 암자 입구에는 산행을 하다 지친 사람이 하루쯤 묵어가도록 아담한 방을 만들어 놓았다. 다시 500m쯤 내려오면 몸이 불편한 비구니 스님이 있는 삼불사이다. 요란한 개 짖는 소리를 뒤로 하고 내려서면 실상사 약수암으로 가는 길목인 도마마을이다.

    ◇ 서암정사, 벽송사, 칠선계곡

    마천면 소재지에서 강을 따라 가면 산 중턱에 채석장이 보이고 의탄리에 닿게 된다. 임천강으로 이름이 바뀐 강을 가로지르는 타원형의 콘크리트 교량을 건너 들어서면 지리산 계곡 중에서 가장 길이가 길고 아름다운 칠선계곡이다.

    추성리 삼거리에서 광점동 방향으로 올라서면 서암정사와 벽송사 이정표가 있다. 가파른 길을 오르면 주차장이 나오고 우체통이 있는 삼거리가 서암정사와 벽송사 갈림길이다. 서암정사는 원응(元應)스님이 1960년대 중반부터 터를 이루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던 곳에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인류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발원으로 불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불교의 화엄세계를 상징하는 갖가지 장엄한 마애불로 채워져 있고, 중심은 불경 속 극락세계의 장엄함을 석굴 속에 재연해 놓은 석굴법당이다.

    서암 입구에서 1.2km쯤 가파른 산길을 올라서면 벽송사가 고요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절 입구에 1969년 산불이 났을 때 머리가 타버려 숯이 되었고, 코도 떨어져 나가 참담한 모습이 되어 버린 목장승 2기가 답답한 전각 안에서 맞이해 준다. 벽송사의 창건연대 등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지만 절 뒤편 낮은 언덕에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474호)으로 미루어 볼 때 신라 말이나 고려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벽송사는 중창 불사가 한창인, 공사장을 뒤로 하고 대나무 숲 사이로 올라서면 우람한 소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이다. 벽송사 나무 장승은 민중미학의 본질을 보여주는 빼어난 장승으로 판소리 여섯 마당 중 외설적인 것으로 알려져 온 ‘변강쇠가’가 벽송사 일대를 무대로 삼고 있어 유명해졌다.

    지리산 칠선계곡은 천왕봉에서 발원하여 마폭포를 시작으로 칠선폭포, 선녀탕, 용소 등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沼)와 담(潭)으로 만들어 있어 자연이 주는 최고의 비경이다. 10년 동안 자연휴식년제를 도입으로 출입이 통제됐다가 지난 5월 5일부터 예약제로 개방을 하고 있다. 휴식년제 이전에 가끔 칠선계곡을 따라 오르던 추억이 새롭다. 용소의 푸른 물이 굉음을 내고 있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 여행 TIP

    ◇칠선산장: 마천면 추성리 299-1. 정갑순(☏ 055-962-5630). 산채정식:1만원.산채비빔밥:6000원. 해발1000m 이상 높은 산에서 직접 채취한 산나물과 버섯으로 맛깔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낸다.

    ◇경남식육식당: 마천면 가흥리 524-4. 정옥란(☏ 055-962-5037). 1인분 7000원. 함양 마천에서 생산되는 흑돼지는 육질이 쫄깃하며 씹을수록 구수한 맛으로 인기가 높다. 삼겹살에 마천 막걸리를 곁들여 먹으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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