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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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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4) 기억과 망각

우리는 역사를 잊어버린 것일까

  • 기사입력 : 2008-06-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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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일본군은 순식간에 부산을 점령하고, 우리 지역인 경남과 경북을 거쳐 조선의 전 국토를 유린했다. 1598년 말까지 이 전쟁은 계속되었다. 7년의 긴 전쟁은 조선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긴 전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보급을 하고, 군대가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주둔지가 필요하다. 우리 경남 지역 중 상당수는 일본군에게 점령이 되어 7년간 일본군이 버틸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 흔적은 왜성이라는 일본식 성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왜성들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 반면 우리가 잘 아는 것이 있다. 이순신, 의병 등등. 이순신 위인전을 읽은 사람은 옥포해전, 한산해전, 사천해전, 노량해전, 부산포 해전 등 수많은 해전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도 하나쯤은 이름을 댈 수 있을 것이다.

    그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위인전으로, 교과서로, 드라마로, 다큐멘터리로 이순신은 그렇게 우리에게 위대한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반대로 우리 주변에 무수한 흔적들이 남아 있고, 우리 지역에 훨씬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일본군의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그 기억들을 잊어버린 것이다.

    왜 우리는 그 기억들을 잊어버린 것일까? 정말 시간이 오래 지나서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일 뿐인가? 그렇다면 왜 이순신의 수많은 전투는 기억할 수 있는가?

    답은 하나다. 우리는 역사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망각해 버린 것이다.

    임진왜란은 우리 민족에게는 부끄러운 상처로 남아 있다. 나라는 사실상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모든 것은 1/3이하로 떨어졌다. 기억하기 싫은 그 상처를 동여매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억’이다.

    새로운 기억에는 패배의 상처란 없다. 이순신이 등장하고, 권율이 등장하고, 의병이 등장한다. 그들은 한없이 열악한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승리를 이끈 영웅이 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위인전에 포장되고, 의병들이 치른 사소한 전투라도 ‘승리’만 했다면 어떻게라도 전적비를 세운다거나 유적지로 지정해서 사람들에게 승리의 기억을 안겨준다.

    반면 우리에게 잊힌 것들이 있다. 우리가 패배한 곳은 그저 흘러 넘긴다. 의병들과 관군들의 충돌도 잊히고, 일본에 붙어 배신을 한 이들도 잊히고, 의병이라는 명목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들도 잊히고, 명나라 지원군이 우리에게 어떤 잔혹한 일을 했는지도 잊혔으며, 일본과의 휴전회담은 조선이 없는 상태에서 명나라와 일본만이 했다는 사실도 잊혔다. 수년 동안 우리 지역을 통치한 왜성들은 그대로 버려졌다. 물론 왜성이 잘 보존되었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보고 싶은 것을 보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역사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속된 말로 ‘쪽팔리는’ 것은 들추고 싶지 않으며, 옆에서 들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망각되어 갈 뿐이다. 망각으로 비워진 두뇌 공간에는 우뚝하고 영광스러운 기억으로 채워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서 조선이 그토록 밀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본군을 몰아내고 위대한 민족성을 다시 확인한 임진왜란을 기억할 따름이다.

    기억과 망각은 단지 부끄럽다는 심리적인 이유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역사의 편집권을 쥔 승리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점만 기억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점은 알리고 싶지 않다. 따라서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에게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는 망각되어야 할 역사였으며, 신라의 역사는 기억되어야 할 역사였다. 그리하여 삼국사기는 ‘삼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압도적인 신라 기록들로 가득 차 있다.

    고려가 멸망하고 나서 ‘고려사’를 쓴 조선의 학자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끝까지 고려에 충성한 포은 정몽주 같은 사람은 어떻게라도 강조해야 하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조선의 유교이념 중 핵심이념인 ‘충’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부는 어떻게든 반공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좌익이 우익에게 저질렀던 학살은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기억’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정확히 13만명이 학살되었다’라는 명확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우익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죽인 이들은 얼마나 되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대충 감으로 ‘50만인지, 100만인지, 150만인지’ 짐작할 따름이다. 그렇게 한쪽의 학살은 철저히 기억되었고, 한쪽의 학살은 철저히 망각되었다.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원자폭탄을 맞았다는 그 기억만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 그들이 행했던 많은 학살, 파괴, 잔혹행위는 망각하도록 하였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은 ‘피해자 일본’만이 있을 뿐, ‘가해자 일본’은 망각된 공간이다.

    기억과 망각으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렸을 적 필자가 임진왜란 책을 보면서 ‘아니, 조선이 이긴 전투는 이렇게 많고, 패배한 전투는 몇 번 되지도 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전쟁이 오래 갔을까?’라고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진실은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필자는 치를 떨어야 했다.

    “기억은 또 다른 망각의 과정이다.”

    필자의 지도교수인 도진순 교수의 말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기억할수록 더 많은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외려 더 많은 사실을 망각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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