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5일 (목)
전체메뉴

[금요칼럼] 소가 웃을 일까지는 하지 말아야 - 장성진 (창원대 국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08-04-25 00:00:00
  •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노래로 불리어 더욱 친숙해진 정지용의 시 <향수 designtimesp=16561>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국인의 가슴에 향수로 남아 꿈에서도 차마 잊히지 않는 그 자리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황소라고 하였다. 실제로 농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황소의 선한 눈매가 그려질 법하다.

    우리 민족에게 소는 각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가축이로되 노동을 함께하고, 한 집안의 빈부와 흥체를 같이 경험하는 운명 공동체로서 평생을 지내기도 하였다. 꿈에 소를 보면 조상이라고 여겼고, 불가에서는 전생에 불경을 지고 다니던 소가 사람으로 환생하였다가 극락으로 간다고도 하였다. 사람으로서는 덕이 깊은 은자나 순박한 목동이 아니면 그 등을 빌릴 수 없다. 한국인에게 소는 그러한 존재이다.

    최근 대통령의 미국 방문 과정에서 쇠고기 수입에 관한 문제가 처리되었다는 보도가 있다. 세부적인 일정과 항목에 대해서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아무런 제한 없이 수입을 개방한다는 것이다. 제일 요란스러운 반응은 정치권에서 나온다. 정부 안에서조차 자유무역 협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설명과, 그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청문회를 주장하는 야당과 토론을 내세우는 여당도 한마디로 시끄럽기만 하다. 어제의 이들은 오늘의 저들이 아닌가. 오래 끌어오던 문제 치고는 너무 갑작스럽게 선언하였고, 충격과 반향의 크기를 감안하면 여태 너무 지지부진했던 게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한 접근 관점으로 제시된 것은 두 가지이다. 소비자인 국민의 건강권과 생산자인 축산 농가의 생계가 그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검역이, 후자에 대해서는 지원책이 당연히 거론되었다. 정부가 제시한 후속 대책은 매우 장황하다. 원산지 표시 대상 음식점을 확대하고, 상품 이력 추적 제도를 시행하고, 위생과 검역을 강화하고, 현물 검사 비율을 확대하고, 도축세 폐지를 추진하는 등등이다. 그러나 속내를 더 솔직하게 내보인 것은 대통령과 주무 장관의 발언이다.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에 도움이 된다”, “강제로 공급 받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으로, 민간이 알아서 할 것”, “복어를 제독하듯이 제독을 잘 하면 된다”는 말이 그것이다. 말한 사람의 자리와 말이 어긋난다.

    시민단체의 대응도 별로 더 나아갈 수 없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밥상에 오르는 것을 막는 일은 이제 시민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말하는 데는 비장함이 엿보인다. 구체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판매점의 지역 진입을 막고, 시민들을 상대로 미국산 쇠고기 안 팔고 안 먹기 운동을 펼친다는 데서는 고심의 흔적과 함께 실천 가능성에 회의가 생긴다.

    국제적 교류가 필수적인 시대에, 산업의 무역 의존도가 극히 높은 한국이 마냥 팔기만 하고 사지는 않겠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쇠고기 문제는 좀 더 치밀해야 한다. 그것은 음식 문화와도 관계가 있으며, 소에 대한 정서적 전통과도 관계가 있다. 수입되는 쇠고기는 부위별로 갈라져 포장된 살덩어리로서, 그것이 살았을 때도 오직 식료품으로만 길러졌다. 따라서 그 주인들처럼 적당히 골라 굽거나 삶아 먹는 부위와 용도로만 제한해야 한다. 마굿간에 매여 있거나 아침저녁으로 매만져지면서 자란 소는 더 이상 노동의 협력자는 아니어도 여전히 정서적 동반자의 후예들이다. 이런 소는 비록 식용으로 쓰이더라도 살과 뼈와 꼬리와 심지어 피와 내장까지도 알뜰히 먹어야 한다. 그것은 탐욕이 아니라 일종의 예의이다.

    쇠고기 수입 정책의 최종 결정 과정에서는 한국인의 음식문화와 조리법에 따른 건강상의 안전성, 대책 마련과 수입 결정의 선후 문제, 소라는 동물에 대한 체험과 정서적 친밀감 등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눈앞의 경제적 손익계산서만으로 쫓기듯 밀어붙이다가는 소가 웃을 일이 생길지 모른다.

    장성진 창원대 국문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