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금요칼럼] 널뛰기 정책이 사교육을 부추긴다 - 장성진(창원대 국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08-03-21 00:00:00
  •   
  • 신명나게 어우러지는 농악 마당에서 긴 상모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몇 발씩이나 되는 끈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감길 듯 풀어지고, 너울거리며 굽이쳐 구경꾼의 눈길을 사로잡곤 한다. 그런데 그 현란하게 춤추는 끈을 거슬러 살펴보면 풍물꾼의 까딱거리는 고갯짓과 마주친다. 열두 발 상모놀이는 고갯짓에서 비롯된다. 그렇듯 교육 문제도 제도에서부터 출발한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 입시 정책을 마련해 주는 대학교육협의회에서 2009학년도 입시의 틀을 정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올해 입시에 비해 수시 모집의 비율이 높아져 내신 성적이 중요해지고, 수능시험 등급제 평가의 대안으로 백분위 점수와 표준 점수가 활용되며, 논술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여기에 저소득층 자녀의 기회 균형 입학자를 늘리고 재정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도 추가되었다.

    얼른 보아서는 올해 입시와 많이 달라져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든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편하게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 흔히 2008학년도 대학 입시 방안을 두고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러왔다. 입시생들 사이에서 생긴 말이다. 내신, 수능, 논술 등 세 영역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며, 또 그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서 더욱 압박감을 느낀다는 뜻에서 붙여진 말이다. 실제로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별다른 정보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적당히 원서를 낸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결정적 권위를 발휘한 것이 사설 학원에서 배포한 대학 및 학과별 지원 지침서였고, 사교육 기관의 위력은 한껏 높아졌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세 가지를 무분별하게 끌어들인 정책의 잘못이다. 내신이란 학생이 학교 생활을 한 전체의 ‘과정’이다. 수능은 그 결과로 성취한 학업의 수준 곧 ‘능력’이다. 논술은 그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독립된 영역의 ‘성적’으로 취급, 단순히 합산하여 합격의 자격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그러자 두 가지의 반응이 나타났다. 서울의 몇몇 대학이 고교간 격차를 내세워 내신 등급간의 격차를 최소화하여 무력화시켜 버렸다. 입시 학원에서는 내신 성적 높이기 특효 수업을 개발하였다.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학교는 그 과정조차도 허술할 것이라는 편견이 시골 학생의 앞길을 가로막은 셈이다. 논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출제 가능성 높은 쟁점을 정확히 뽑아내고, 채점을 예측한 항목별 서술 능력이 속성으로 길러진 것이다.

    대학들이 인재 양성보다 확보에만 매달리는 행태에 대하여 나무랄 수는 있지만, 학원이 약삭빠르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정해진 기준과 방향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한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합논술이라는 해괴한 영역이 도입되고, 그에 대한 체계적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학교들이 학원의 강사를 불러들여 수업을 맡기거나, 노골적으로 논술은 학원에 가서 해결하라고 학생들을 떠밀지 않았던가.

    2009학년도라고 해서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수시고사에서 내신을 중시한다고 하고서는 자격 조건으로서 수능 등급을 한껏 높이 설정한다든지, 논술 또는 심층면접을 실질적 문제 풀이로 진행한다면 결과는 별반 달라질 게 없다. 논술을 축소한다고 하지만, 은근히 그것을 실시하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을 차등화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간다면 사교육의 위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아울러 한 가지 짚을 것이 있다. 사설 학원에 대한 이중적 태도이다. 현재의 입시 제도 아래서 학원 교육의 집중성과 관리의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교육관이나 방식에 대하여 뭔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럴 가능성에 대하여 우려하고 개선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만, 예능과 같은 여러 영역에서 학교 교육을 대신하여 이룩한 성과도 제대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를 비롯한 교육 제도를 너무 자주 바꾸어 왔다. 거기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성과 위주로 집중하는 과정에서 사교육 시장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결과적으로 그것을 부추긴 교육 정책 당국은 그 책임을 자기 몫으로 삼고, 사교육이 공교육의 충실한 보조자로서 위치와 역할을 할 수 있게 균형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장성진

    창원대 국문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