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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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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4·9총선에도 인지부조화라 - 조용호(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8-03-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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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년 전 국회를 출입할 당시 정가에서 이런 문답이 있었다. “직업 중 가장 좋은 직업은 무엇이냐.” 답은 장관이었다. 선출직도 아니면서 많은 공무원을 거느리고,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실권을 갖고 있으니 최고의 직업이라고 했다. 장관에게 “과연 최고의 직업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면서도 “국회의원만 없다면” 하는 조건을 달았다. 장관이 최고의 직업임에는 틀림없지만 수시로 국회에 불려가 국회의원이 묻는 말에 대답해야 하고, 잘못 답하면 두고두고 시달리다 목이 달아나기도 하니 그것이 애로라는 것이다. 장관에게 제일 골치 아픈 사람은 국회의원인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직업에 대한 답은 바뀐다.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 본인들은 “무슨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대세는 ‘국회의원 좋은 것 안 해 본 사람은 모릅니다’이다. 대통령은 예외이다.

    그 국회의원을 뽑는 4월 9일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본선보다 예선인 공천 경쟁이 극심하다. 경남은 한나라당의 텃밭이라 하여, 후보자들은 ‘공천=당선’으로 생각하고, 공천에 거의 목을 매고 있다. 경남 만의 현상도 아니고, 현실 정당 정치에서 어쩔 수 없는 전국적 현상이다.

    총선을 앞둔 숱한 후보자들의 출사표를 보고 느끼는 점은 그들의 자질과 용기이다. 현역이든 신인이든 ‘과연 국회의원 감이 되느냐’ 하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을 빼는 용기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뜻’을 품지 않으면 정치 입문을 할 수 없는 것, 그렇기 때문에 출마 자체를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질과 용기는 거의 자의적인 판단일 경향이 높고, 유권자들의 평가와는 따로 놀 수 있다. 불일치, 부조화이다.

    부산지법 재판부가 얼마 전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을 인용했다. 쉽게 말해 사람은 인식과 행동 간에 조화를 이루려는 욕구가 있는데, 그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땐 ‘부조화’의 좌절을 겪는다는 것이다. 전 청장이 인사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았지만, 그 불명예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과거 인식을 왜곡하여 거짓말을 한다는 심리적 ‘부조화’ 상태라는 것이 재판부의 해석이었다. 여성 동물애호가가 소가죽 옷을 구입할 때 옷을 사려는 행동과 동물보호를 해야 한다는 인식 간에 불일치의 상태에 도달하면, 어떤 합리화나 변명을 만들어 놓고 옷을 사고야 만다는 논리와 같다. “소는 이미 죽었는데, 그것으로 옷을 만드는 게 뭐 어때” 하는 식이다. 50년대 이 이론을 만든 미국의 페스팅거는 “우리는 위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놀라운 정신활동을 한다”고 했으니 도대체 사람의 심리 상태는 짐작할 수 없다.

    경남신문이 지난주 도내 16개 선거구에 대해 실시한 총선 여론조사를 매일 매일 공표할 때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여론을 그대로 담아내 버리니 뭔가 분별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 이게 이렇구나”하는 확연한 인식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인식의 일치를 보았을 것이다. 그런 현상을 유식하게 표현하면 ‘일치이론(congruity theory)’이다.

    그러나 후보 당사자들은 “내가 왜 저것밖에 안돼” 하며 불일치를 느꼈을지 모르겠다. 선거 출마하면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후보자들은 없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떨어질 줄 아는데도 후보자 혼자만 모르는 것이 정치이다. 죽어 봐야 저승길을 안다고 했던가.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다 죽는다. 좋게 표현하면 이런 식의 유머 문답도 성립한다. “인삼은 6년근일 때 캐는 것이 좋은데, 산삼은 언제 캐는 것이 제일 좋은가요?” 답은 ‘보는 즉시’이다. 국회의원이든 자치단체장이든 선거가 있을 때 출마하여 당선되고 싶은 강한 욕망이자 심리인 것이다. 그 욕망이 가슴에서 솟구칠 때 누가 말린다고 멈춰질 것인가.

    여야 할 것 없이 공천 물갈이로 난리이다. 그런 노력과 갈등의 결과가 ‘4·9총선’에서 나타나는 국민 정서와 일치할지 불일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조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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