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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조선왕조실록과 史官 - 목진숙(논설주간)

  • 기사입력 : 2008-01-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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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가 남긴 기록문화유산의 보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이러한 가치는 유네스코가 우리 실록을 지난 1997년 10월에 한글(훈민정음)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주지하듯이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로부터 시작해 철종 이원범까지의 25대 472년간 역사를 기록한 방대한 편년체 형식의 역사서이자 기록물이다. 단일왕조 전체를 총망라한 기록 가운데 세계에서 그 연수가 가장 길고 양이 많으며, 그 질이 제일 우수한 사서로서 우리 민족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소중한 기록문화 자산이 바로 이 실록인 것이다.

    전주시가 조선 전기 4대 사고(史庫) 가운데 하나인 전주사고에 보관됐던 사고본 복본(원본을 그대로 베낀 것) 제작 작업을 올해에 첫 시작해 2011년까지 완료하려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문광부와 전북도의 후원 하에 진행되는 이 사업에는 1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 한다. 손으로 떠서 만든 전통한지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진본과 똑같이 복본을 만들어서 복원된 전주사고 내에 비치하고 주요 박물관과 도서관, 대통령기록관, 규장각에 보관한다는 것이다. 박물관과 도서관에 이 복본이 전시되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되면 일반인들이 실록에 대한 자긍심을 더 한층 깊이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오늘날의 세태이다. 이럴수록 조선왕조실록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더욱 높아지게 된다. 역사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민족사의 소중함을 일깨워나갈 당위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왕과 왕실을 중심으로 하여 기록된 것으로서 왕의 모든 행위가 기록 대상이 된다. 기록 임무를 담당한 사람을 사관(史官)이라 불렀다.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사관의 기록을 열람할 수가 없었다. 이러하다 보니 왕은 자신의 사사로운 행위에서부터 통치행위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더러운 이름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래서 ‘왕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늘과 역사뿐’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의 실록이 뛰어난 것은 국가의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 경제, 사회, 학문, 예술, 생활사 등 삶의 전 분야를 망라해 다루고 있으므로 왕조사뿐만 아니라 당대의 문화·생활사, 그리고 동양사 연구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아시아권 나라의 실록은 우리처럼 그 내용이 풍부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리고 있었던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직필과 공개·열람 금지란 편찬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진 것은 우리 실록뿐이라고 하니 그 가치와 중요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임진왜란 때 실록을 보관했던 세 곳의 사고는 모두 불타고 안의와 손홍록 등 의인들의 목숨 건 노력으로 인해 오직 전주사고만 보존됐으며, 이후 복본 간행사업을 펼쳐 전란으로부터 안전한 곳이라고 여긴 태백산, 오대산, 마니산, 묘향산 깊은 곳에 사고를 지어 보관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병자호란, 일제강점으로 인해 수난을 받았다.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2질, 정부기록보존소에 한 질, 북한에 한 질이 보존돼 있다.

    옛 사관의 직급은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그 책임이 막중했으므로 선발 기준이 매우 까다로웠다고 한다. 역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때론 왕과 권력층을 대적해 목숨 걸고 싸워야 했기 때문에 학문적 자질뿐만 아니라 곧고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여야 했기 때문이다. 사관으로 선택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의 영예로 여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날에 있어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은 누구일까? 여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은 언론사 기자일 것이다. 매일매일 생겨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과 국정·행정 등 나랏일 전반에 걸쳐 보도한 기사들은 사학자들이 역사서를 저술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기록들이다. 따라서 기사가 곧 사초(史草)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된 기사를 사초로 하여 후일 학자들이 사서를 간행한다면 역사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올바른 기사 작성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기자들은 ‘현대의 사관’이란 막중한 임무와 명예가 동시에 부여돼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목 진 숙(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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