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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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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가짜 희망 혹은 병적 열망들 -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08-01-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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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연말 어느 문화인들과 송년 모임을 가진 자리였다. 예술 마니아라고 소개된 한 사람이 축배 제의를 받자 벌떡 일어나 뜬금없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이번 선거는 위대한 것”이며 “앞으로 새해를 맞아 새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희망의 세상을 만들자”면서 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어느 정치인보다 더 정치인 같은 그 사람의 말에 순간 분위기가 뜨악해져 버려 썰렁해진 분위기를 다시 띄우느라 사회자가 애를 먹었다.

    새해 들어 고교 동창생들과 오랜만에 식사를 했다. 지역에서 건실하게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친구가 “대선 이후 사회 분위기는 오로지 대통령 당선자가 신이라도 되는 양 모든 일이 그를 통하면 만사형통일 것이란 데서 전과 다른 미묘한 편향성이 느껴진다”고 말하자, 다른 친구가 대뜸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작용이 그만큼 컸던 것”이라는 설명을 단다. 현실정치에 대해 누구라도 한마디씩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야 있겠지만, 현 정권의 실정 탓만 가지고 다음 대통령에게 갖는 과잉기대 심리의 이유라 여기기에는 뭔가가 미심쩍다. 아니면 우리 사회 안에 자본주의적 가치와 함께 추동된 뭔가 다른 문화적 욕망이 개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행보가 빨라지면서 다음 국정의 밑그림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여러 이해 당사자들 간에 논란거리가 되고 있지만, 정치에 무관한 내가 보기에도 이번에는 이상하리만치 그 정책구상을 무비판적으로 손쉽게 받아들이고(물론 온 국민 전체가 아니고 집단화될 만한 다수들만) 무슨 개벽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들뜬 흥분감은 충분히 느껴진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두고 나름대로의 이해통로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정신분석학적 용어를 빌려 설명한다면 이것은 ‘환상’이라는 것, 아니면 자신의 허망을 메울 목적으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증상’쯤 되리라는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어쨌든 우리 국민들에겐 ‘잘살아 보세’라는 새마을운동의 성공 신화가 집단무의식으로 무장해 있는 터에, 괴물 같은 IMF를 만나 추락해본 절망적 경험과 세계 선진경제의 일원으로 편입되기 직전 찾아온 우리 경제의 불안한 위기감 등도 작금의 이상흥분 상태를 키워가는 원인이 될 법도 하다. 대통령을 행정부의 수장이나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상정하지 않고, 오직 좀 더 나은 경제조건의 개선만을 위해 보너스나 넉넉히 주는 일개 회사 사장쯤 여겨져서 호출되는 ‘이명박’은 우리 사회에서 감성적 문화의 낭만적 허위가 얼마나 넓고 깊게 확산되어 있는지 알려주는 우울한 시대적 기표인 셈이다. (기호 2번의 선거전략도 오로지 ‘경제●생존’을 타깃 삼아 그 예상된 약발을 알았기에 자승자박한 꼴이기도 하다)

    그에 앞섰던 정부들이 내뱉었던 ‘글로벌 코리아의 꿈’, ‘동북아 중심국가 한국’, ‘세계로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화려한 레토릭에 감싸인 자존감 높은 ‘대한국인’의 증거가 바로 시장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란 선거구호 아래 온 국민의 지지점이 모아진 사실도 역사의 한 아이러니로 기록될 만하다. 선거 전 시끄럽기 그지없던 대통령 당선인의 비리나 공약의 문제점이 만약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이제는 그에게 투사된 ‘경제 살리기’의 국민적 절대적 기대가 뒤따르므로 그 자체가 바로 카리스마적인 인물로 선망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차이 소멸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발생하는가?

    황우석 박사 사건, 신정아의 예일대 가짜 박사학위 사건, 심형래 감독의 ‘디 워’ 열풍 등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일련의 논란 속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이든 단번에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야심이 배면에 깔려 있었고, 자신의 사회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본주의적 물화체계가 부추기는 무한경쟁의 모방만을 따르는 욕망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위 ‘참된 인간’의 ‘바람직한 삶’ 대신에 ‘돈되는 부가가치’ 창출에만 맹목적으로 노력하다 파멸해 버린 것이다. 지금처럼 새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국민적 희망 혹은 열망이 화폐화, 상품화로만 치닫거나 감성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국가 미래를 위해서도, 대통령 당사자와 국민을 위해서도 결코 유익하지 않다. 물질적, 가시적 효과에만 눈먼 희망과 열망은 일종의 ‘대중 파시즘’의 현현이므로 이 점이야말로 ‘이성적인 힘’이 가장 필요할 때다.

    우 무 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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