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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2007 대선의 추억, 민심과 오리/조용호(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7-12-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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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정해(丁亥)년이 저물어 간다. 60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라고 떠들썩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의 시계추는 쥐띠 해인 2008년 무자(戊子)년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정해년은 ‘선거의 추억’으로 간직된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제17대 대통령 선거이다. 우리는 대선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민심의 바람을 보았다.

    범부(凡夫)들은 그 바람의 정체를 진작에 잘 알지 못했다. 선거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알았다. ‘아, 이런 것이구나. 이게 민심이구나.’

    나는 그 적나라한 민심의 현장을 경남도교육감 선거에서 엿보았다. 첫 주민 직선으로 치러진 교육감 선거는 기호 2번 권정호 후보의 당선보다 기호 1번 고영진 후보의 낙선이 더 화제였다. 고 후보는 현직인데다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8~10% 정도의 우위였으나, 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교육감 선거 후 이런 말들이 회자되었다. ‘만약에 고영진 후보가 가나다 순이 앞서는 <감씨, 가씨 designtimesp=2126> 정도의 후보 한 사람을 나오도록 했다면 기호 2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왜 가만 있다 기호 1번을 받아 가지고…’. 이야기는 또 있다. 이명박 후보와 고영진 후보를 동시에 미는 지지자가 시골 촌로에게 한 표를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기호 2번 이명박 찍어 주이소. 그런데 교육감은 기호 1번입니다”. 촌로로부터 돌아온 말은 “알았다 마, 오리.”

    그 오리가 이번 선거에서 일을 내고 말았다. 오리는 아라비아 숫자 2와 닮았다. 화투에서는 매화와 꾀꼬리가 그려져 있고, ‘매조’라 부르는 2월이다. ‘훌라’ 카드놀이를 할 때 ‘광’으로 팔기도 하는 그 2번, 뒤뚱뒤뚱한 모습의 ‘오리’이다. 공교롭게도 교육감 선거가 있은 전국의 4곳 모두 당선자는 2번이었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기연이다.

    오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 후보가 2번이었기 때문에, 그 ‘바람’을 따라 마냥 2번을 쫓아간 것이다. 달리 설명이 필요 없다. 이것이 민심인 것이다. 이제 와서 새삼 두 후보의 전략 분석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선거의 바람, 그 강풍이 그랬다는 것을 말함이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압승은 영어로 산사태(Landslide)이다. 땅이라는 land와 미끄러지다는 slide가 합해져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땅이 움직여 미끄러지니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인다’는 경천동지(驚天動地)이고, 그게 바로 531만표 차이의 산사태이다. 우리는 대선에서 그 거대한 민심의 바람을 본 것이다.

    대선은 또한 우리에게 정치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치열하던 정쟁(政爭)이 선거 다음날 씻은 듯이 사라지고,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축하와 격려가 이어졌다. 승복의 문화이다. 탈없이 정권이 바뀌는 것만 해도 잘하는 것인데, 정권의 성격까지 바꿔 좌쪽에서 우쪽으로 돌아섰으니 수준작이 아닌가. 외국에 수출해도 될 만한 히트 상품이다. 보수 진보가 수시로 바뀌는 영국이나 프랑스를 부러워했는데, 이젠 세계가 대한민국을 부러워해야 할 차례이다.

    하지만 정권 교체는 5년 후 또다시 교체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표로써 가르쳐 준 것이다. 민심은 국리민복을 위해 열심히 일할 때 머무를 뿐 잘못할 땐 가차 없이 돌아선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5년 내내 몸을 낮춰 겸허한 정치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경구를 항상 되뇌어야 한다.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십이지(十二支) 동물 순서 중 가장 먼저 오는 것이 쥐이고, 무자년의 자(子)가 바로 쥐를 의미한다. 쥐는 일상생활에 피해도 끼치지만 풍요와 희망, 기회, 다산(多産) 식복(食福)이라는 좋은 의미도 많다. 2008년 쥐의 해를 맞아 대한민국 온 천지와 백성들에게 복이 가득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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