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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조두남·이은상·문신의 이름을 크게 부르자

  • 기사입력 : 2007-1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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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사회에서 가곡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1912~1984)과 ‘가고파’를 노래한 노산 이은상(1903~1982)을 얘기한다면 좀 머뭇거릴지 모르겠다. 그들의 문화적 예술적 가치보다 친일 논란의 그림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들 두 사람의 이름과 함께 조각가 문신(1923~1995)의 이름도 크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친일 논란은 논외로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노래와 글을 지은 1930년대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간헐적으로 발굴되는 자료와 일부의 엇갈린 주장만으로는 그들의 일생 전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적 예술적 흔적으로 그들을 볼 따름이다.

    지난 20일 개최된 마산발전심포지엄에서 나타난 내용들을 보면, 발표자들이 약속한 듯 한결같았다. 환경훼손 가능성이 있는 덩치 큰 산업 대신 로봇과 같은 지식형 첨단 신산업과 기후 및 문화·예술산업 육성이었다. 마산의 정체성과 특성을 살린 매력있는 ‘중형도시’였다. 나는 이런 정책의 중심에 문화예술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그 콘텐츠의 중심에는 조두남과 이은상, 문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두남의 ‘선구자’와 이은상의 ‘가고파’는 누가 뭐라 해도 국민이 즐겨 부르는 대표적 가곡이다. 타향에서, 외국에서 이 노래들을 들을 땐 가슴이 뭉클해진다. 선구자는 말 그대로 높푸른 기상을 품은 선구자이다. 이은상이 노래한 가고파는 마산 앞바다이다. 국민들의 고향의 바다인 것이다. 문신은 어떠한가. 세계적인 조각가라는 수식어를 떠나 지금 추산동 언덕 그의 미술관으로 가 보라. 척박한 마산에 이만한 조각공원이 어디에 있으며, 이만큼 마산의 이름을 세계에 떨친 사람이 있는지. 이들 3인의 이름은 고향인 마산보다 서울과 타지, 유럽에서 더 불리고 있다. 참으로 마산만의 역설적인 현상이다.

    심포지엄에서 문화예술에 관해 발표를 한 최성모씨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의 세계에 영웅은 나타날 수 있어도 평등이나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문화예술인들의 특별한 문화적 감성과 예술혼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현재의 마산음악관을 조두남음악관으로 이름을 바꿔, 한국음악박물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또다시 나의 제안을 한다. 상남동 노비산공원에 있는 마산문학관의 이름도 노산문학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이은상은 어릴 적 노비산에 오르내리면서 바라보던 마산 앞바다를 노래했다. 문학관이 노비산에 세워지고서도 노산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지 않는다면 굳이 노비산에 있을 이유가 없다.

    두 건물은 시작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마산음악관, 마산문학관으로서는 문화예술적 경쟁력이 뒤떨어진다. 전국 시·군에 있는 한 건물에 불과할 뿐이다. 통영은 윤이상이라는 브랜드로 통영국제음악제를 개최하여 세계 정상급 음악인들이 찾게 한다. 하동은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단지 평사리 일대라는 이유만으로 최참판댁을 지어 전국 단위 문학제를 열어 문인과 관광객을 흡수한다. 그런데도 마산은 브랜드 가치가 충분한 3인의 걸출한 인물이 있는데도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신 콘텐츠의 적극적인 연구 개발도 시급하다.

    어차피 사회는 브랜드 경쟁력의 시대이다. 일본 프로야구에 이승엽과 이병규가 뛰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왜 이승엽에 열광하고, 요미우리팀을 응원하는가. 그가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브랜드 가치를 가진 ‘스타’이기 때문이다. 98년 IMF 당시 맨발의 투혼으로 US여자오픈을 제패하여 온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던 박세리의 기념관을 짓고, 그 이름을 출신지 충남 공주(公州) 이름을 따 ‘공주 골프기념관’으로 했다면 누가 오겠는가. 핀란드는 곧 휴대폰인 노키아로 통한다. 제품 이름이 국가명에 필적한다. 전남 장성군은 홍길동 출생지를 두고 강원도 강릉시와 벌인 논쟁에서 이겨 홍길동 관광과 캐릭터 사업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 브랜드와 이름은 이처럼 중요한 것이다. 국민들에게 수많은 주옥 같은 글과 노래를 선사한 조두남과 이은상, 조각 예술을 세계에 떨친 문신, 마산에서 이제 그들의 이름을 크게 불러야 한다.

    조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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