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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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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또 다른 호(號)

  • 기사입력 : 2007-11-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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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명(兒名: 어린아이 때의 이름)은 보통 생존 확률이 높지 않았던 옛날에 무병장수를 염원하며 천하게 짓는 것이 관례였다. 개똥이, 쇠똥이, 말똥이 등의 이름이 흔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름을 너무 귀하게 지으면 운명을 관장하는 하늘이 시기해 일찍 명을 앗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관명이 희(熙)였던 고종황제의 아명이 개똥이었고, 황희(黃喜)의 아명은 도야지(都耶只)였음이 그 사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논개(朱論介)는 1574년 9월 3일 술(戌)시 생이다. 특이하게도 갑술(甲戌)년 갑술(甲戌)월 갑술(甲戌)일 갑술(甲戌)시의 4갑술(甲戌)의 사주를 지니고 태어났다. 여기서 술(戌)은 ‘개’를 상징하므로 사주(四柱)가 모두 개이기 때문에 ‘개를 놓았다’(‘낳았다’의 사투리)는 뜻에서 이두(吏讀)의 한음(漢音)을 따서 논개(論介)로 작명하였다고 전해진다. 무남독녀인 논개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논개의 부모가 일부러 천한 이름인 논개라고 한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다 이름을 가졌으며 더구나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에게는 특히 이름이 존귀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옛 속담에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인생은 백년을 못 다하고 사라지지만 이름은 후세에 전하는 것이니 소홀히 취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요즘은 너도나도 이름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많다. 젊은 예비 부모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공부를 해서 어떻게 지으면 좋은지 미리 알고 작명(作名)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책은 봤지만 그래도 미심쩍고 자신이 없으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음양오행은 물론이고 격(格)과 형식을 꼼꼼히 챙기는 걸 보면 변한 세태를 실감케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개명(改名)에 있다. 개명 사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실제로 누가 보아도 촌스럽거나, 발음상 놀림을 받을 소지가 많은 경우와 흔히 ‘누가 어떻게 지어 줬는데, 어디 가서 물어 보니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해서 고민이다’라고 하는 경우다.

    전자든 후자든 개명에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무작정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하기보다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름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겠다. 자칫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 개명이다. 청소년기까지는 그래도 개명을 통해 듣기 거북한 이름을 신중하게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될 때는 법원에서도 개명을 허가한다. 그러나 장년이 된 사람이 개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름은 주변에서 많이 불러 주어야 하는데 그동안 익숙해진 이름을 갑자기 바꾸면 불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아호(雅號)가 무려 200여개가 넘는다. 완당(阮堂)을 비롯해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 노과(老果) 등 워낙에 삶의 태도가 기고만장한 사람이라 각 시기별 그의 사상 편력과 관심의 편린들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해 낸 증거들이다. 호(號)는 자신의 이름 이외에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또 다른 이름으로 아호(雅號), 당호(堂號), 필명(筆名). 별호(別號) 등으로 부른다. 굳이 크나큰 업적을 세우고 명사로 소문나야만 호를 갖고 당호를 갖는 것은 아니다. 호를 갖는다는 것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이름 외에 또 다르게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이름인 것임에야. 자기에 대한 사랑과 애착을 강조하는 것 이상이겠는가?

    여성의 경우 경주댁, 순천댁처럼 친정의 지명을 딴 택호(宅號)를 사용했지만 사회 참여가 남성 못지않은 현대에는 택호보다 아호를 갖는 것이 더욱 자기표현에 유리할 것이다. 당호(堂號)를 사용한 신사임당(본명 인선), 허난설헌(본명 초희) 등은 좋은 예이다.

    개명이 곤란한 경우 호를 가져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연태 四柱이야기

    역학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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