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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53)]`화려한 휴가'와 세상 보기

  • 기사입력 : 2007-08-01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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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껴라



     글샘: 퀴즈 하나 낼게. 총보다 무서운 게 뭔 줄 아니?


     글짱: 네? 그런 게 무슨 퀴즈예요?


     글샘: 영화 `화려한 휴가'를 아직까지 안 본 모양이구나.


     글짱: 아, 그 영화요? 내일 친구들과 보러 갈 참이었어요.


     글샘: 내가 낸 퀴즈는 그 영화에 나오는 대사란다. 바로 `사람'이라고 말하지.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나면 왜 그런지 알게 돼. 지난 토요일에 글샘은 중학 2학년인 아들과 같이 보고 왔단다.


     글짱: 어땠어요? 영화 보며 눈물 흘리는 사람이 많다던데.


     글샘: `1980년 5월 광주'를 기억하고 있는 어른들은 물론, 그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우리 청소년들까지 눈물샘이 터지는 영화지.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겐 책 한 권 더 읽는 것도 좋겠지만, 지난 시대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필요하단다. 세상을 보는 눈, 논술에선 그런 시각이 틀에 짜 맞춘 글쓰기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글짱: 가볍게 영화 이야기를 하는 듯하더니 또 다시 논술탐험으로 저를 끌어들이네요.

     

    세상을 보는 시각을 더 넓히려면...


     글샘: 굳이 논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논술도 세상을 보는 시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한 글이잖아. 머리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 보라는 것이지.


     글짱: 그런데 어떤 식으로 느끼고, 생각하라는 건가요?


     글샘: 지난주 경남 지역의 `화려한 휴가' 상영관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일해공원 명칭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니?


     글짱: 아뇨. 신문도 꼼꼼히 보고 논술 준비를 해야 할 고교생이지만 솔직히 그런 시간 낼 여유가 없어서요. 요즘은 방학이라  학원에서 다루는 몇 가지 시사 뉴스만 챙겨 볼 뿐이거든요.


     글샘: 논술공부에 도움되려고 신문을 본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아.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기 위해 신문을 보는 게 아닐까.`화려한 휴가'가 개봉하던 날 시민사회단체들이 창원·마산·진주·김해·거제·밀양·통영 등 도내 곳곳에서 집회나 1인 시위를 하며 일해공원 명칭 철회와 현판 철거를 촉구했어.


     글짱: `일해공원'은 지난 2월 논술탐험 때 찬반문제를 다룬 적이 있어 잘 알아요. 그러면 `화려한 휴가' 상영에 맞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 명칭' 문제를 시민단체에서 재부각시킨 거라고 보면 되겠군요.


     글샘: 그런 셈이지. 글샘이 늘 강조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것에서 `생각 넓히기'는 시작된단다. 청소년들이 `화려한 휴가'를 꼭 부모님과 같이 봤으면 좋겠어. 요즘엔 청소년 자녀와 부모가 함께 영화 볼 시간을 갖기도 힘들잖아. 아마 세대가 다른 만큼 느끼는 점도 다를 거야. 처음엔 그냥 본 그대로 느끼는 거야. 그 다음에 부모님과 얘기를 나눠 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가 적절할 거야. 여기서 얻는 건, 그 무엇보다 값진 교육이라고 장담하지.


     글짱: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누라고요?


     글샘: 지금 마흔 살이 넘은 부모님들은 영화 `화려한 휴가'에 담긴 아픈 역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 27년 전의 일이니까. 비록 다듬어지지 않은 말이라 할지라도 부모님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얘기가 더욱 와 닿을 수 있다는 뜻이란다.


     글짱: 그러면 글샘은 아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글샘: 중학생이라 그런지 자세한 건 몰라도 학교에서 `5·18'에 관한 얘기는 들었다고 하더구나. 아들은 내게 이렇게 묻더구나. `그때 광주에서 우리나라 군인들이 우리나라 국민을 무자비하게 죽일 때, 다른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뭐 했느냐'고 말이야. 그 당시엔 군사정권이 나라를 장악했기 때문에 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못하던 시대라고 설명하긴 했지만, 아들이 이해할 만한 답변이 됐는지는 모르겠어. 비극의 역사와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내 탓이 아닌데도 `이런 나라가 미안할 뿐'이라고 답했으니까.

     

    2007년 오늘,  총보다 무서운 것은...


     글짱: 어쩌면 글샘도 `1980년 5월'을 잊고 지낸 건 아닐까요?


     글샘: 나도 대학 다닐 때 가톨릭센터 지하 강당에서 영화보다 잔혹했던 `광주 비디오'라는 걸 처음 보고는 피가 거꾸로 솟기까지 했었는데…. 그래서 이제 미안한 마음에 아들 손을 잡고 영화관을 찾았는지도 몰라. 신애(이요원)가 영화 끝 부분에서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라고 울부짖을 때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건 아마도 부끄러움의 눈물이었을 거야.


     글짱: `1980년 5월'과 마찬가지로 `2007년 오늘'에도 총보다 무서운 게 있는 건 아닌지요?


     글샘: 좋은 질문이야. 그런 무서운 것을 지금 세상에서 스스로 찾아내는 게 생각 넓히기라고 할 수 있어. 하나만 예를 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려다 되레 잃게 만드는 비정규직 보호법 같은 게 있겠지. 다른 무서운 것들도 많겠지만.


     글짱: 이 무더운 여름에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정말 강렬한 것 같네요. 온 국민이 다 봤으면 좋겠어요.


     글샘: 이 영화를 볼 때 모두가 마음으로만 느꼈으면 해. 일부에선 `왜 하필이면 대선을 앞둔 시기에 개봉했나' 하는 우려 섞인 얘기도 하거든. 하지만 `잊혀져가는 역사를 되살려낸 영화'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으면 좋겠어. 영화를 비판하기보다는 세상을 비판하라는 것이지.  `5·18을 제대로 몰랐던 청소년들이 의무적으로 봐야 하는 숙제 같은 영화'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물론 영화를 본 뒤 논술이나 감상문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당연히 가슴으로 써야겠지.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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