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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된 사람'이 많은 사회

  • 기사입력 : 2007-04-27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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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넘어질 듯 빗속으로 달려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안스럽다. 노인이 보다 못해 묻는다. “얘야. 다칠라. 뭘 그리 급히 가느냐.” “학교에 남보다 빨리 가려고요.” “수업시간도 멀었는데 빨리 가서 뭘 하려고.” “공부해야지요. 그래야 엄마 아빠가 바라는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잖아요.” “좋은 학교 가서 뭘 할건데.” “좋은 학교에 가야 출세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죠.” “그 다음엔.” “편안하게 살다 그러다 죽는 거죠 뭐.” “이놈아. 그래 죽으려고 앞만 보고 뛰어 가느냐.” 우스개 같지만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일반화된 삶의 궤적이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은 자리에서.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일 수 있다. 어느 부모인들 이를 부추기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승희 조’의 버지니아 공대 총기사건은 정형화되다시피 한 이런 삶의 욕구를 되짚어 보게 한다. ‘승희 조’는 우리 사회의 잣대로 보면 적어도 충격적인 총기사건이 있기 전까진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유수 대학에 진학한 성공한 대학생으로 비친다. 그의 누나도 ‘아메리칸 드림’을 어느 정도는 이룬 것 같다. 하지만 부모가 낯선 땅에서 팍팍한 생활을 하는 사이 어린 승희는 외형상의 이질감에 소외되고. 소통이 단절된 환경에서 이상 성격으로 변한 듯하다. 일거에 구렁텅이에 빠진 가족과 한 젊은이의 짧은 삶이 안타깝다.

    참극 직후 미 경찰이 ‘승희 조’의 기숙사에서 발견한 글과 선언문에선 기성사회와 부유층의 향락에 대한 반감이 확인됐다. 정신질환자의 소행이라곤 하지만 현대사회의 잠재적 비극이다. 그는 벤츠와 금목걸이. 코냑과 보드카. 부모의 유산펀드(trust fund) 등을 거론하며 부자와 향락의 상징으로. 또 기성질서를 속물(snob)이라고 쏘아붙였다. 사건 초기 알려진 “너 때문에 이 일을 저지른다(You caused me to do this)”는 글에서 ‘너(You)’는 특정 개인이나 여학생이 아닌 불특정한 세상을 상대한 저주이기도 했다. 부자 나라에서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이 가져온 아이러니가 아닌가 한다.

    여기서 한 젊은이의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일반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인간되는 교육보다 출세하는 교육에 치우친 작금의 현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엔 언제부턴가 ‘난사람’. ‘든사람’은 많아도 삶의 향기가 배어 있는 ‘된사람’은 찾아 보기 어렵다. 조기 유학 열풍도 ‘난사람’. ‘든사람’을 만들려는 부모들의 욕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또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 세월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함께 뛰면서 ‘배고픈’ 문제를 해결할 때와는 달리 富(부)가 한쪽으로 치우쳐 ‘배 아픈’ 문제가 사회 갈등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동양사상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和諧(화해)사상이라고 했다. 和는 곡식(禾)을 함께 먹는(口)다는 공동체의 의미이고. 諧는 모든 사람(皆)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言) 소통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더불어 사는 사회의 모습과 다름아니다. 또한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다. 인성을 높인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인간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며 ‘된사람’이 바로 그 모습이다. 그리고 인간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다른 것을 향하여 열려있는 상태이며 다른 것과 소통되고 있는 상태랄 수 있다. 사람 人(인)자도 글자의 모양처럼 서로 기대고 돕는다는 뜻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된사람’이 많은 사회다. ‘된사람’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된사람’은 양보하고 배려할 줄 알며 이웃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성공 스토리’에 집착하지 않고 사고와 정신이 건강하다. ‘된사람’이 많은 사회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계층적 위화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세상을 향한 분노나 저주도 찾아 보기 어렵다. 하지만 ‘된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학교와 가정의 꾸준한 관심과 인간되는 교육에서 비롯된다.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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