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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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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백범 선생이 보고 있다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7-03-30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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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범 김구 선생의 귀가 몹시 간지러울 것 같다. 근자에 들어 선생이 생전에 하신 ‘말씀’들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서울 용산의 백범기념관은 ‘정치지향 인사’들로 북적댄다. 이를 두고 화를 버럭 내고 계실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실지 알 수는 없다.

    김태호 도지사가 일부 언론에서 대선 후보군으로 거론되자 최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평생 소원이 ‘독립정부의 문지기’인 것처럼 국가와 민족의 문지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도정 현안들이 많아 경선 참여를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한 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당인으로서 역할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한 말이다. 늘 우리 정부에서 가장 천하고 낮은 자리를 원했던 백범 선생이 1919년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가 내무총장 도산 안창호에게 임시정부 문지기를 청했던 사실을 절묘하게(?) 갖다 붙였다. 평소 김 지사 자신의 소신 여부는 차치하고 미묘한 시기에 놀라운 말솜씨다.

    손학규 전 지사는 지난 19일 백범기념관에서 가진 한나라당 탈당 기자회견에서 ‘백척간두’로 운을 뗐다.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는 중국 당나라때 長沙(장사)스님이 한 말로 100척(약 33m)이나 되는 대나무 끝에 간신히 서 있는 사람에게 한 발 더 나아가라’는 의미다. 이는 스무살의 청년 백범이 황해도 치하포 나루터에서 칼을 차고 숨어 다니는 왜인을 국모 명성황후 시해범 일당으로 알고서 살해할 때 떠올렸던 ‘懸崖撤手丈夫兒’(현애철수장부아: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마저 놓는다면 가히 대장부로다)와 다름 아니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주류와 태생적으로 달라 탈당의 변은 십분 이해하지만 현재로선 ‘21세기 주몽’이 될지 ‘손인제’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지난 21일 ‘자유시민연대’ 창립 6주년 기념식이 열린 백범기념관에서 “이젠 보수도 변해야 한다”며 “젊은 보수. 건강한 보수”를 강조해 장소가 장소인지라 눈길을 끌었다. 정동영 전 의장을 지지하는 모임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출범식(1월21일)을 가졌으며. 정 전 의장 자신은 지난해 6월 의장직을 사퇴하면서 “가장 낮은 곳에 서서 희망의 싹을 틔우는 데 땀 한 방울이라도 보태겠다”며 ‘懸崖撤手丈夫兒’를 통째로 인용하기도 했다. 제1차 대통합신당추진 연석회의(2월28일). 천정배 의원의 출판기념회(3월7일). 전진코리아의 대한민국 선진화대회(12월21일) 등이 열린 곳도 백범기념관이고. 5당 대표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재계. 노동계 등 각계 대표 1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투명한 대선을 다짐한 자리(3월9일)도 이곳이었다.

    대선가도에 앞서 경선가도에 자천타천의 주자들이 줄지어 섰다. 범여권은 거론되는 인물만 10여명이나 된다. 한나라당은 빅2에다 손 전 지사가 빠진 자리를 메울 인사가 몇 명이나 될지 점치기 어렵다. 민주노동당은 3명이 출사표를 던졌고 여타 당에서도 명함을 내밀 태세다. 3김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언감생심.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가 아니라 뜻이 있는 자라면 도전해 볼 수 있는 자리로 변했다는 얘기다. 그만큼 권위가 사라지고 대중속으로 내려와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자리로 바뀐 것이다. 국민들이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 환영할 만하고. 연말 대선까지 주자들의 ‘백범 사랑’은 계속될 것이란 점은 쉽게 짐작이 간다.

    김구 선생은 알다시피 우리의 근현대사와 함께 해오신 분이다. 무릇 지도자의 자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자리란 말이 있다. 김구 선생은 이런 사명감에 철저했다. 일생이 정직과 겸손 그 자체였고. 백성사랑 나라사랑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셨다. 때문에 대선(경선)주자들이 김구 선생을 따르며 닮으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다만 선생이 생전에 즐겨 썼던 서산대사의 오언절구를 먼저 되새겼으면 한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이 쌓인 들판을 걸어갈 때라도 어지럽게 걷지 말라. 지금 내가 걷고가는 발자국이 다음에 오는 사람에겐 길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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