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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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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내가 노 대통령이라면'

  • 기사입력 : 2007-02-09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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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易地思之(역지사지)는 경상도 말로 ‘니. 내 돼 봐라’쯤으로 이해된다.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요즘 꼴이 말이 아니다. 도무지 말이 먹혀 들지 않는다. ‘나 싫다고 가는’ 탈당사태를 막을 수도 없다. ‘내가 노 대통령이라면’ 지금 심정이 어떨까. 속에 천불이 날 법도 하다. 그래서 잠시 노 대통령이 되어 항변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먼저 내가 ‘格(격)’이 문제라니 따져보자. 때와 장소를 가려 말하고 품위를 지켜 세련된 표현을 하라면 못할 것도 없다. 목소리를 짝 깔고 밑에 사람이 써준 연설문 곳곳에 위엄을 잔뜩 넣어 언젠가 귀에 익었던 ‘본인은···’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이게 시쳇말로 권위라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낸들 ‘다워야 한다’는 공자의 正名(정명)사상을 모를 리 없고 ‘君君(군군) 臣臣(신신) 父父(부부) 子子(자자)’(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란 구절도 꿰고 있다. 국익 운운하지만 이제 목소리 좀 내도 된다. ‘본 데가 없다’고 윽박지르니 억울하다. 市井(시정)아치들과 얘기하듯 대중 속에 낮게 임하겠다는 생각을 아예 접으란 말인가.

    ‘탓’만 한다고 탓할 일도 아니다. 신용카드 남발로 가계부도를 초래했던 前 정권이나 IMF사태를 빚었던 前前 정권의 연장선상에서 경제를 풀려니 짚고 넘어갈 것은 짚고 넘어가야 되지 않겠는가. ‘언론 탓’만 해도 그렇다. 재갈을 물리다시피 했던 군사정권 시절이라면 언론 탓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소위 ‘미다시’(제목)를 보면 자극하기 좋은 말만 골라 뽑는다. 언론 때문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제법 유식한 사람들도 몇몇 언론의 해설을 그대로 읊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서서히 중독되고 있는 게 아닌가. 최근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언론기관의 조사에서도 편집방향이 광고주와 사주의 영향을 받고 있다지 않은가.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도 꿀릴 게 없으니 개혁하겠다는 거다.

    지난 4년간 ‘민주’는 또 얼마나 신장됐는가. “너. 노무현이지”란 말이 가장 심한 욕이라고 한다. 멀리 긴급조치 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쉬쉬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는 뭘 의미하는가. 대통령이 희화화 될 수 있는 사회. 곧 대중과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내가 인기가 없는 것은 그렇다 치고 개혁·민주세력을 통째로 매도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존의 잘못된 관행에 손을 대고 특권의식을 바로 잡으려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갈길 바쁘다고 어두운 과거사를 묻어두란 말인가. 공무원 사회에 귀신보다 무섭다는 혁신이 진행 중이고 점차 투명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구도 타파도 이 정권만의 화두는 아니었다. 역대 정권이 별러오던 것을 하려니 조용하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행정복합도시만 하더라도 어느 대선주자는 더 강화하겠다고 했다. 정치에는 손을 떼고 민생에 전념하라는 말도 듣기에 거북하다. 아직 임기가 1년이나 남았다.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국정을 살피는 게 대통령에게 주어진 의무다. 정치인 중의 정치인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정치 아닌 게 어디 있는가. 몇 차례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민생을 생각하면 입술이 부르틀 지경이다. 그리고 이참에 꼭 하고 싶은 게 있다. 간이과세제 폐지와 누진세율 세분화 등 ‘표심’을 자극할까봐 미뤄왔던 세정의 큰 틀을 바꾸고 탈세한 자는 명단을 공개해 파렴치범으로 기록했으면 한다. 동네 북이 된 마당에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각설하고.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항변하다 보니 이해할 만도 하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도 역지사지로 국민의 입장이 돼 보면 어떨까. 기왕에 공자말이 나왔으니 공자가 주유천하하면서 얻은 정치의 세 가지 기능을 살펴보자. 첫째가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잘살게 하고. 둘째로 백성들이 전쟁의 참화를 당하지 않도록 군비를 튼튼히 하고. 셋째로 백성들이 믿게끔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선 순위는 믿음-경제-국방 순이다. 지지도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는 것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신뢰를 얻기엔 뭔가 불안하고 부족한 듯하고. 국민은 당장에 ‘등 따습고 배 부른’ 걸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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