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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차라리 '참회공원'으로 개명하라

  • 기사입력 : 2007-02-02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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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규(경남대 법학부 교수)


    합천은 넓은 들이나 고도의 산업기반은 갖추지 못했지만. 그 대신 아름다운 산과 물을 간직한 고장이다. 동쪽에 가야산이. 서쪽에 황매산이 있고. 황강이 군을 가로지르며 유장한 합천호가 경남의 젖줄을 담고 있다. 그뿐이랴. 세계적인 문화유산 팔만대장경과 그것을 품고 있는 법보사찰 해인사를 안고 있어. 합천은 문화적으로도 대한민국의 어느 고을에 못지 않은 지명도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합천이 배출한 인물도 적지 않다. 용기와 충절의 상징 죽죽을 필두로. 무학대사와 남명 조식이 합천에서 났고. 최치원이 생애의 후반부를 가야산에 은거하며 보냈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 전두환이라는 찬탈자·독재자를 낸 것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것이 합천군민의 잘못도 합천군의 성가를 깎는 것도 아님은 물론이다.

    그런데 합천군이 스스로 아픈 상처를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드러내어 자랑하려고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합천읍 황강변에 도비와 군비 68억원을 들여 조성한 ‘새천년 생명의 숲’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으로 개명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2000년 새천년의 시작을 기념해 착공하여 2004년 완공한 ‘새천년 생명의 숲’은. 비록 가칭이었지만. 썩 잘 된 작명이었다. 그러한 이름을 가진 공원이라면 틀림없이 정말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넘치는 빼어난 공간일 것이고. 그대로 합천군의 또 하나의 자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전 전 대통령을 기념하여 그의 아호를 붙이다니. 도대체 합천군수와 관계자들은 역사의식이 있는 거냐고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합천군은 여론조사 결과 군민의 다수의견이 ‘일해공원’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 여론조사라는 것이 5만4천여 군민 중 새마을지도자와 이장 등 1천364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그 중에서 302명이 ‘일해공원’에 찬성했다고 한다. 다수의견이라고 해도 찬성률이 22%에 불과한 데다. 조사 대상자의 구성이 더 수상하다. 새마을지도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엊그제 일해공원 개명 찬성집회를 연 사람들이 아닌가. 이쯤 되면 집행부가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어 조사대상자를 선정해서 여론조사를 진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합천군의 집행부는 합천군이 우리나라에서 통틀어 몇 안 되는 대통령 중의 하나를 배출했으며. 이는 합천군민의 자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통령을 역임했기 때문에 무조건 그 고장의 자랑스러운 인물이라는 것은. 도둑질을 했더라도 돈만 많으면 자랑스런 부자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재임 중의 치적에 대한 평가야 갈릴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어떻게 해서 대통령이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언제 우리 국민이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적이 있는가. 총칼을 앞세워 합법적인 정부를 뒤엎고. 소생하려는 민주주의를 군화로 짓밟고. 거기에 수많은 민주시민을 학살하며 피묻은 손으로 정권을 탈취한 인물이 아닌가.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그를 존경하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히틀러를 찬양하는 네오나치가 있듯이. 어떤 극악한 인물도 극소수의 추종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전 전 대통령은 역사적 평가 이전에 우리 실정법의 단죄를 받은 사람이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반란죄. 내란죄 및 수뢰죄를 적용하여 무기징역에 처하는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는 점을 벌써 잊었는가. 지금 그가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그후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하여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특별사면되었기 때문이지. 죄가 없어서가 아니다.

    전 전 대통령이 합천 출신이라는 것은 결코 합천군민의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움이다. ‘생명의 숲’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정말 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면. 그 고장에서 찬탈자가 나온 것을 부끄러워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러한 인물이 나오지 않도록 다짐하는 ‘일해참회공원’으로 개명하기를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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