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금요칼럼] 한·미FTA, 빅딜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 기사입력 : 2006-12-29 09:55:00
  •   
  • 한·미FTA 협상이 애초 양국이 예정했던 것처럼 올해 말까지 타결한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되었다. 정부와 찬성론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농민. 노동자 등 반대자들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막 내리고 종친 건 아니다. 미국의 통상교섭 절차에 따르면 아직 3개월여의 시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지껏 합의를 보지 못한 쟁점들의 수가 적지 않은데다가 그것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들이어서 남은 기간에 통합협정문을 만들어 내기는 어려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우리측 협상대표는 협상 타결을 위해 사안별로 주고받기(상호 양보)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은근슬쩍 흘리고 있고. 심지어는 양국 정상의 정치적 결단. 즉 빅딜(통째로 주고받기)이 불가결하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이 대목에서 과연 한·미FTA 협상이 크건 작건 주고받기로 타결되어도 좋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협상팀들은 말할 것이다. 협상이란 원래 주고받기가 아닌가. 서로의 요구를 내세우다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상호 양보 또는 수용으로 타협하는 것이 바로 협상이라고. 좋다. 그렇다면 뭘 주고 뭘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미국에게 약제비 적정화 방안 포기. 쇠고기 수입검사 완화. 자동차세제 변경. 공기업 내지 공익성 기업의 외국인 지분 제한 완화 내지 철폐. 쌀 시장 개방 등을 주어야 할 지 모른다. 우리는 뭘 받을 수 있을까? 반덤핑관세. 상쇄관세 등 무역구제 조치의 발동 요건 완화.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전문직 비자 쿼터의 획득. 미국 각 주들로부터 ‘내주민대우’의 보장 약속 등이 고려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쉽게 내어주거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잘못하면 소탐대실이 될 가능성도 높다.

    협상팀들은 모든 사안이 차별없이 동일한 무게를 가지며 그래서 하나씩 또는 통째로 주고받을 수 있는 등가의 대상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교환이니. 빅딜이니하는 말 자체가 이를 방증해 준다. 한·미FTA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길이고 이번에 타결하지 못하면 ‘살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빅딜을 통해서라도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고 강변할 것이다. 하지만 협상의 내용에 따라 울거나 웃어야 할 국민들은 이들의 생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환의 의미가 단순히 요구들 자체의 주고받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컨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포기는 환자의 생명과 국민의 의료비 급등과 교환되는 것이며. 농산물 검역절차의 간소화는 국민의 안전한 식생활과 맞바꾸는 것이다. 쌀 시장 개방은 국내 농업의 소멸로 인한 농촌 환경의 파괴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는 중국발 농산물 부족 사태와 그로 인한 식량 가격의 폭등 사태에 따라 우리가 입어야 할 미증유의 손해를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이미 쌍방이 합의한 까닭에 장차 빅딜의 대상으로조차 간주되지 않는 사안들 중에는 중대한 독소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으로 지나친 투자자 보호 조항과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들 수 있다. 이 조항들이 가진 문제는 누누이 강조되어 왔으므로 재론할 필요조차 없지만. 자국 법원의 권위를 부정하고. 3심제 원칙도 지키지 않으며. 지금까지의 경험상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운용되어 온 허울 좋은 국제중재제도를 무엇과 바꾸면 수락할 수 있을 것인가.

    끝으로 한·미FTA는 포괄협정이다. NAFTA의 경우에 비추어본다면 한번 체결하면 10년동안 유효하고 만기 1년 전에 연장 불가의 서면 통보가 없으면 자동으로 10년 연장될 것이다. 발효 기간 중에는 부분 개정이나 협정 무효 조치를 할 수 없다. 어찌 타협이나 빅딜로 끝낼 수 있는 협정이라 할 수 있을까. 분야별 득실의 주고받기라면 수용할 수도 있다. 적어도 이득으로 손실을 보상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 자존심을 짓밟는 독소조항들은 내몰라라 하는 그런 식의 빅딜은 용납될 수도 없고 용인되어서도 안 된다.

    서익진(경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목진숙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