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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과 진인사대천명

  • 기사입력 : 2006-12-20 0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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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적과 진인사대천명



    작년 이맘때의 일로 기억된다. 고등학교 2학년생 학부모인 형수께서 “삼촌. 조카 부적 하나 써 주세요” 하는 게 아닌가. 평소 부적을 쓰지 않을 뿐더러 부적의 효능에 대한 의구심이 많은 나로서는 달가운 일이 아니었지만 써 주지 않았다가 행여 조카 대학 진학이 잘못돼 원망듣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주사(경면주사: 鏡面朱砂)를 사다가 정성을 다해 부적 한 장을 써주고는 베개 밑에 넣어 두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조카는 올들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수시합격했다. 형수는 “삼촌이 써 준 부적이 효력을 발휘했다”며 저녁 한턱 크게 내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부적의 기원은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바위나 동굴에 해. 달. 새. 짐승. 사람 등 주술적인 암벽화를 그린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부적의 기원으로 대표적인 예는 처용(處容)의 화상을 들 수 있다.
    역귀(疫鬼)가 처용의 아내를 범하자 처용이 노래와 춤으로 감복시켰다.

    역귀는 처용의 화상이 그려져 있는 곳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신라인들이 역귀를 물리치기 위해 처용의 화상을 문에 붙였다는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한다. 사용 목적은 복을 더욱 증가시키는 것과 사(邪)나 액(厄)을 물리치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샤머니즘에서 특히 귀신을 쫓는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부적에 쓰이는 경면주사는 중국의 귀주. 호남. 사천 등의 지방에서 나는 광물성의 한약재다. 독이 있어 그냥 사용할 수 없고 포제방법에 따라 수비(水飛)해서 쓴다.
    청심안신(淸心安神) 작용과 실면다몽(失眠多夢). 심신불안(心神不安) 등의 병증에 쓰이는 한약재인데 많이 쓰이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 태어난 火체질과 가을에 태어난 金체질(대략 음력4. 5. 6. 7. 8. 9월생이 여기에 해당된다)은 기(氣)는 왕성한데 반하여 혈허증(血虛症)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血이 부족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한 마음이 생기며 저녁에는 늦게 자도 되지만 꿈이 많고 아침에 일어날 땐 몸이 무겁다.

    조카는 火체질에다 고3 스트레스까지 겹쳤으니 불안한 증상이 있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그래서 부적과 조카 사이에 어떤 교감이 일어나 불안한 증상을 좀 완화시켜주고 푹 잘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라고 믿는다. 부적은 이럴 때 쓴다.
    하지만 부적이 만능은 아니다. 조카도 만약 부적의 힘을 믿고 공부하는데 소홀히 했다면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면 부적의 힘을 믿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업이 잘되지 않을 때. 팔리지 않는 부동산을 팔 수 있도록 해달라거나 사고예방 질병 등 부적도 여러 가지로 쓴다. 그것도 아주 비싼 금액의 부적을 쓰는 경우도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열심히 노력한 후에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지 노력도 하지 않는데 부적의 힘은 무용지물이란 걸 반드시 알아야 한다.

    결국 부적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다. 대학입학뿐만 아니라 매사가 그러하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괜한 의존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굳건히 밀어붙이는 근성과 의지를 체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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