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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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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한명숙과 박근혜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6-12-15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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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회에 ‘라면 해설’이란 게 있다. ‘~라면 이렇게 될 것이다’는 식으로 그럴듯한 전제나 가정하에 기사를 엮어 낸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정치의 계절인 요즘. 정계개편과 관련해 흔히 등장한다. ‘민주개혁대연합론’ ‘범보수연합론’ ‘중도보수연합론’ ‘중도세력통합론’ ‘통합신당론’ ‘제3당론’ 등 대선과 맞물린 시나리오에 머리가 어지럽다. ‘괴발개발’(고양이 발자국과 개 발자국이 아무렇게 찍혀 있는 것처럼 어지럽게 써놓은 글) 풀어 내다보니 때론 ‘아니면 말고 식’이다. 때문에 필자도 가상 시나리오를 긁적거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한명숙과 박근혜. 박근혜와 한명숙을 내년 대선에 여야 대권주자로 내세우면 어떨까. 멋진 한판 승부가 될 것 같다. 이유는 여럿 있다. 먼저 누굴 찍더라도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지금까지 대권 마당에서 남성들이 특출나게 잘한 게 없다는 걸 인정한다면 이젠 여성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성은 국정 운영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연약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면 작금에 정계에 진출한 여성들의 활약상에 비춰 여성들에게 부족했던 건 능력이 아니라 기회였고. 근육이 많고 목소리 크다고 강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경험으로 알 법하다.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우리나라만의 화두는 아니다. 프랑스에선 내년 4월 대선의 사회당 후보로 세골렌 루이얄이 뽑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게 됐다. 미국에선 힐러리 클린턴과 콘돌리자 라이스가 대권 후보로 거론된다. 올 3월엔 칠레사상 첫 여성 대통령(미첼 바첼레트)이 탄생한 것을 비롯 핀란드 타르야 할로겐. 필리핀 글로리아 아로요. 아일랜드 메리 메컬리스. 스리랑카 찬드라 쿠마라퉁가. 라이베리아 엘렌 존슨 설리프 등 현직 대통령이 6명이나 된다. 우리도 신라시대 선덕왕과 진덕왕. 진성왕 이후 대가 끊겼으니 여성 대통령시대를 열 때가 된 것이다.

    시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21세기는 천지의 봄. 여름 양시대가 끝나고 가을. 겨울의 음시대가 열려 여성의 힘이 커지고 있다지 않는가. 통계청은 2022년부터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보다 많아져 확실한 ‘여성 상위’시대가 도래한다고 예고한다. 작명가들은 딸이 커서 활동할 때를 염두에 두고 중성적인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는 전언이고. 경제 전문가들은 여성관련주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권할 정도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결과도 30~40대의 절반 이상이 여성 대통령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여성의 장점이 힘보다 감성이 좌우하는 이 시대에 적합하다는 점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협조력. 세세한 부분까지 보살피는 세심함과 부지런함. 산고를 이겨낸 인내심과 가족에 대한 희생정신. 가계부를 꼼꼼히 챙기면서도 이웃을 생각하는 넉넉함. 감싸고 보듬어 안을 줄 아는 포용력과 부드러움 등등. 우리의 메마른 정치와 사회환경을 촉촉히 적셔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온갖 갈등과 불신을 실은 대한민국號(호)를 바로 조종하면서 ‘어울림의 항해’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게다가 하늘이 정해 둔 대한민국의 운명도 무시할 수 없다. 각자의 허물은 접어두고. 역대 대통령들은 하늘이 맡긴 소임을 다했다. 이승만 대통령(이하 존칭생략)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한반도를 지켜 냈다. 박정희는 가난을 딛고 근대화를 일궜다. 최규하는 혼란기 무난히 자리를 넘겨 줬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역설적으로 민주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김영삼은 군부정치에 종지부를 찍으며 문민시대를 열었고. 김대중은 남북화해의 디딤돌 역할을 해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배와 기득권층을 허무는 작업을 충실히 하고 있다. 공직사회에는 귀신보다 무섭다는 혁신도 진행중이다. 바야흐로 이젠 하늘이 여성에게 ‘소임’을 맡길 때가 됐다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한명숙과 박근혜. 박근혜와 한명숙은 선택에 망설일 게 없어 좋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이 뚜렷하고 민주화와 산업화로 대별된다. 또 한 분은 남편의 복역 탓에 늦둥이 외아들을 두고 있고 한 분은 독신이다. 정치권이 헤쳐모여식 줄서기를 하더라도 ‘성향’이 분명한 것이다. 어쨌든 오늘 글을 두고 대권가도를 달리는 남성들이 펄쩍 뛴다면 기우다. 어디까지나 假想(가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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