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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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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5평 쪽방 독거노인 여름나기

  • 기사입력 : 2006-08-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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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워도 좋으니 아프지만 않았으면…

    봉사단체 제공 도시락 하나가 하루 식사 전부

    녹내장·두통·류머티즘… 선풍기 바람도 '고통'

    거동 못해 찾는 이 없으면 요강 넘치기도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제발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외로이 살아가고 있는 독거노인들의 여름나기가 무척이나 힘겹다.

    마지막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16일. 19년째 다발성 류머티즘을 앓고 있는 이병희(78)할머니를 만나 힘겨운 여름나기를 지켜보았다.
    오후 1시30분께 마산시 산호동에 위치한 할머니의 댁을 방문했다.

    언뜻 보기에도 몇 십년은 됐을 법한 허름한 2층집.

    올라가는 계단마저 너무 가팔라 젊은 기자가 올라가기에도 조심스러운 2층의 5평 남짓 작은 방에서 할머니는 쓸쓸히 늦은 점심을 드시고 계셨다.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요강. 작은 냉장고. 꺼져있는 선풍기. 어두운 TV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할머니의 보금자리는 너무나 초라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방금 봉사단체에서 도시락을 가져왔다”며 할머니는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밥상을 물리신다.

    좀 더 드시라는 기자의 권유에도 극구 사양하며 밥상을 물리시는 할머니의 손과 발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인해 모두 굽어 있어. 밥상을 치우는 모습마저 힘겨워 보인다.

    잠깐 뵙기로도 할머니는 거동조차 어려운 몸인데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봉사단체에서 매일 보내주는 도시락으로 하루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다.

    성인 남성의 한 끼로도 모자랄 양의 밥과 몇 안 되는 반찬이 할머니가 드시는 하루 식사량의 전부인 것이다.
    유독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올 여름 할머니는 사실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녹내장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 때문에 이 무더운 여름에도 할머니는 선풍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더위를 식히려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있으면 눈과 머리가 아파 도저히 선풍기 바람을 쐴 수 없다”며 “심심하고 외로워도 좋으니 제발 몸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힘겨운 삶이 묻어나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특히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전혀 거동할 수 없는 할머니는 항상 누워서 생활하다 보니 여름철 달갑지 않은 손님인 ‘욕창’을 맞이해 올 여름은 더욱 힘들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할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 고통과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기초수급자로 선정된 할머니는 매달 30여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매달 방값으로 10만원. 이런저런 세금을 제하고 나면 실제 할머니가 사용할 수 있는 생활비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거동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 여름에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지만. 겨울에는 난방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30만원으로 생활하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다”며 할머니는 다가올 겨울 걱정을 잊지 않는다.

    또 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몇몇 사람들의 무책임한 봉사활동이다.

    “봉사단체와 사회단체로부터 갚지 못할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감사하는 할머니도 “몇몇 지키지 못할 봉사약속으로 불편을 겪을 때도 있다”고 섭섭한 마음을 내비친다.

    “며칟날 찾아오기로 약속을 했다가 간혹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한 이틀 정도 봉사단체가 방문을 하지 않은 날도 있다”며 “이런 날은 요강이 넘쳐나도 손쓸 방법이 없어 상당한 불편을 겪어야 한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신다.

    그래도 꾸준히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죽어서도 잊지 못할 거라는 할머니. 할머니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걸어 나오는 기자의 뒷모습에 할머니는 “찾아줘서 고맙다”며 덕담 한마디를 잃지 않으셨다.

    “아무쪼록 건강하세요.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경남사회복지관의 옥미주 사회복지사는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도움의 손길은 주로 연말연시에 집중되고 있어 여름철에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라며 “특히 중증의 병환을 가지고 계신 독거노인들은 정서적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결연단체의 꾸준한 방문으로도 독거노인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헌장기자 lovely@knnews.co.kr

    [사진설명]   16일 오후 찌는듯한 무더위속에 19년째 다발성 류머티즘을 앓고있는 이병희(78)할머니가 자택에서 선풍기에 의지한 채 더위를 식히고 있다. /성민건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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