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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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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 땅 순례 (17) 거제

  • 기사입력 : 2006-07-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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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과 바다의 행복한 어울림


    이른 아침 고요한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길도 또 다른 설렘으로 시작된다. 자동차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들과 산. 강의 경치에만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는 여행길 에는 아름다운 바다와 섬과 크고 작은 배들이 행복한 손짓을 하며 스쳐 지나간다. 어슴푸레한 안개 속에서 다가왔다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풍경들은 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

    동백나무숲.원시림 우거진 '지심도'

    ▲ 지심도

    고현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장승포 유람선 선착장(☏ 055-681-6007)으로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갈아타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장승포항에서 지심도를 오가는 동백호 유람선을 운항하는 25년 경력의 반용호(47·011-864-0279)선장은 배가 선착장을 떠나자 마이크를 잡고 구성진 목소리로 지심도 안내를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갑판에 올라가 20여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나면. 이내 원시의 동백 숲이 우거진 섬 지심도가 반겨준다.
    안내를 미리 부탁해 두었던 손민국(48·010-6383-8123)씨가 평생 2번밖에 깎지 않았다는. 묶은 머리에 구릿 빛 그을린 얼굴로 선착장에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지심도에는 조선 시대부터 15가구가 이주하여 살기 시작하여 현재는 13가구 20명의 주민들이 섬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민박을 운영하며 생활하고 있다. 세 군데로 흩어져 있는 민가로 올라가는 좁은 콘크리트 포장길은 동백나무 숲과 원시림이 우거진 벼랑을 따라 마을로 이어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좁은 길에서 다닐 수 있는 이륜차를 삼륜차로 개량하여 작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최근에 현대식으로 지은 펜션도 있지만 대부분 일제시대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식당을 겸한 홍씨 민박집에 점심을 부탁해 놓고 섬을 잠시 둘러보았다. 봄이면 흐드러진 붉은 동백꽃으로 수놓았을 풋풋한 흙냄새가 풍기는 오솔길 옆 숲에는 잔치가 벌어지듯이 가지가지 버섯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파도가 출렁이는 섬의 끝자락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상의 낙원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섬을 구석구석 안내한 손씨는 2년 전 지심도에 왔다가 아름다운 동백과 후박나무. 그리고 밤이면 반짝이는 반딧불이에 반해 주저앉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이곳에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군사시설인 포진지 4곳. 서치라이트 보관대. 레이더 기지 등의 흔적이 곳곳에 아직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었다.

    '거제포로수용소터'는 공원으로 새 단장

    ▲ 거제포로수용소터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으로 남아있던 거제포로수용소터는 유적공원으로 새 단장 되어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에 있다. 이미 입장이 끝난 주말 늦은 시간인데도 2만6천평 공원에는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복원된 포로막사. 취사장. 야전병원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에 의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1951년 2월부터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1951년 6월말까지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명 등 최대 17만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으며 그 중에는 300여명의 여자포로도 있었다. 1952년 5월 7일에는 사령관 돗드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기도 했다. 고현중학교 운동장과 이웃한 곳에 당시의 건물잔해 몇 개가 겨우 남아있다. 건물잔해는 페치카와 어느 미술교사가 당시의 포로 생활상을 벽화로 그렸으나. 희미하게 남아있는 경비대장 집무실. 보급창고와 무도장의 원형 시멘트 바닥. 경비중대의 일부가 구석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거림리 뒷산엔 고려 의종 '폐왕성지'

    산비탈 오르면 '신광사 오량석조여래좌상'

    ▲ 폐왕성지·오량석조여래좌상

    우리나라 섬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거제도는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로 통영과 연결되어 있어 육지나 다름없이 도로로 쉽게 왕래할 수 있다. 신거제대교에서 잠시 내려 눈을 돌리면 일망무제로 아름다운 풍광이 다가온다. 30여 년 동안 거제와 통영을 이어주던 거제대교는 이제 임무를 완수하고 할일을 후대에게 물려준 아름다운 노병처럼 조용히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신거제대교를 건너면 폐왕성지와 오량석조여래좌상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국제친환경 농산 안으로 난 임도를 따라가면 길가에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가 지천으로 달려있다. 임도변에 핀 들꽃을 따라 6km 쯤 가면 폐왕성 안내판이 반겨준다. 안내판 뒤쪽 희미한 오솔길을 따라 올라서면 폐왕성지가 펼쳐진다. 이 성은 고려 의종 24년(1170) 정중부 등 무신들의 변란으로 폐왕(廢王)이 된 의종이 거제도로 추방되어 3년간 지냈던 곳이다. 둔덕면 거림리 뒷산 우두봉에 위치하고 있는데. 둘레는 약 550m. 높이 5m로 고려 후기 성벽 축성기법이 남아있다.

    성이 있는 우두봉을 한 바퀴 돌아 잡목이 그늘을 주는 자갈과 콘크리트 포장 길을 내려오면 오량마을이다. 마을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산비탈 쪽으로 오르면 막돌탑 사이로 오량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신광사가 보인다. 1950년경 오량리 절골에서 발견된 불상은 고려 의종이 폐왕성(廢王城)을 쌓고 머물면서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토굴 안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은 어깨는 넓게 표현했지만 하체를 왜소하게 나타내고 있어 어딘지 불안정해 보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입은 옷은 비교적 얇은 편인데 밀집된 옷주름을 보이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로 올리고 손가락이 아래로 향한 항마촉지인으로 석가모니불임을 알려준다. 불상이 앉아 있는 자리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원추형의 상대와 하대만 남아 있다.

    '사등성지' 유적 대접 못 받고 쓸쓸히 남아

    ▲ 사등성지

    국도 14번으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들이 줄줄이 들어온다. 관광안내소가 있다는 번듯한 안내표지판보다 못한 관광안내소를 지나면 사등성지이다. 평지의 들에 돌로 쌓은 사등성은 둘레 986m. 높이 6.1m이고. 고려 원종 12년(1271) 왜적의 침입으로 거제도민이 진주·거창 방면으로 피란했을 때. 수월리에서 나무 울타리를 치고 생활하다가. 세종 4년(1422)에 사등리로 관아를 옮겨 성을 쌓았다고 한다. 성의 일부는 허물어지고 잡초가 우거졌는가 하면. 일부는 민가의 울타리가 되어 대문의 지주로 쓰이고 있었다. 성벽을 따라 각종 중장비 들이 주차되어 있어 유적으로 전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 거제향교·기성관

    사등성을 나와 사곡 삼거리에서 거제면 방향으로 들어섰다. 거제 향교는 조선 세종 14년(1432) 고현에 처음 세워졌으나 현종 5년(1664)에 거제로 옮겨졌다. 명륜당과 동재가 앞에 있고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뒤에 있는 전학 후묘의 형태다. 명륜당의 서쪽에 서재가 없고. 대성전의 규모가 명륜당에 비해 매우 큰 것이 특이하다.

    다른 향교에 비해 영역이 넓으며 전체에 토속적인 돌담을 둘렀고 담장 밑에 여름 꽃들이 반겨준다. 거제 기성관은 거제면 사무소 앞에 있으며. 앞에서 보면 9칸, 옆에서 보면 3칸의 규모이다. 창문이나 벽이 없이 시원스럽게 터진 마루바닥이고. 배흘림기둥에 공포를 둔 주심포 형식의 건물이다. 길 건너편에 거제 동헌의 부속 건물로 당시 도서관 역할을 했던 거제 질청이 있다.

    계룡산 자락엔 반곡서원.세진암 삼존불상

    ▲ 반곡서원·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상

    계룡산 자락 옥산금성 아래 거제여상 뒤편에 반곡서원이 있다. 1704년 숙종30년에 세워졌으며. 우암 송시열선생 등을 배향하고 있다. 대원군의 서원 폐지령으로 폐철되었다가. 1906년 서원의 옛터에 제단과 비석을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흔한 안내판 한개 없이 지붕에는 잡초만 무성한 채 쓰러져 가고 있었다. 서원과 담장을 대고 있는 세진암에서 목조여래삼존불상을 만난 것은 또 하나의 행운이다.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은 모두 각각 대좌 위에 가부좌 형식을 하고 있다. 불상은 50㎝ 크기의 단아한 작품으로 조선후기 18세기의 전형적 양식을 갖춘 작품이다.


    [맛집]
    ▲홍씨민박: ☏681-7182 일운면 옥림리(지심도). 홍종관(53) 남경숙(45) 부부가 훈훈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정식:6천원. 옻닭. 해물파전.
    ▲3대 냉면: ☏637-3955 신현읍 고현리. 담백한 육수와 후한 인심 때문에 냉면을 입에 넣으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보통 6천원. 곱빼기 9천원.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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