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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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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남해 노도

  • 기사입력 : 2006-05-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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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포 김만중 선생의 흔적 어린 작은 섬

    유배생활중 최초 국문소설 `구운몽' 집필한 곳

    기거했던 초가 복원…선착장 포구엔 유허비도

        남해도에서도 배를 띄우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상주면 벽련리 노도. 
        서포 김만중은 이곳으로 유배되어 최초의 국문소설 ‘구운몽’을 비롯한 ‘사씨남정기’ 등을 집필하였으며 이곳에서 병사했다.
        자신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결국에는 파면과 유배로 생을 마감했던 선비들. 남해는 그 선비들을 말없이 받아준 유배의 섬이다.

        남해를 거쳐 간 유배객은 기록만 보더라도 자암 김구. 서포 김만중. 약천 남구만. 소재 이이명. 후송 유의양 등 3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끝내는 이곳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서포 김만중이다. 
        서포(1637~92)는 조선시대 문신으로 최초의 국문소설 ‘구운몽’을 비롯해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등을 집필했던 문장가로 1665년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 삼남의 진정을 조사했다.

        이듬해 경문학 헌납을 역임하고 동부승지가 되었고. 1685년 홍문관대제학이 되었으나 선천으로 유배되어 1688년 방환되었다. 이듬해 박진규 이윤수 등의 탄핵으로 다시 남해 노도로 유배돼 이곳에서 병사했다.
        그림 같이 펼쳐진 창선·삼천포대교를 지나 이동면에서 상주해수욕장 방면(19번 국도)으로 앵강만 해안도로를 40여분 가량 지나다 보면 건너편으로 가천 다랭이 마을을 마주하고 있는 작은 섬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서포의 유배지 노도다.

        남해에는 68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는데 그 중 노도. 조도. 호도 3곳만이 사람이 사는 유인도이고 나머지는 무인도이다.
        노도는 상주면 양아리 벽련마을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14가구 19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벽련마을과는 훌쩍 뛰어서도 건널 수 있을 듯 지척으로 보이지만 사공이 배를 띄우지 않으면 뭍으로 오를 수 없는 가깝고도 참으로 먼 섬이다.

        선착장에 도착하면 포구 바로 앞에 1988년 9월에 남해청년회의소에서 세운 서포의 유허비가 있다. 높이 2.2m. 너비 1.8m의 이 비문에는 ‘창망한 바다 가운데 한 점의 섬 노도는 김만중 선생이 숙종 15년(1689년)에 위리안치되어 불후의 국문소설 구운몽을 집필하시고 동 18년 56세의 일기로 서거하신 곳이다’라고 시작하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인가를 따라 20여분 늦은 걸음으로 올라가면 서포가 유배와서 기거했다는 초가가 복원돼 있다. 또 여기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우물터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개성으로 운구되기 전에 잠시 묻혔던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는 가운데 각양각색의 섬꽃들이 방문객을 유혹하고 있다.

    남해=김윤관기자 kimy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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