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4일 (수)
전체메뉴

[금요칼럼] 도마뱀 꼬리 자르기

  • 기사입력 : 2004-07-09 00:00:00
  •   
  • /박승훈(사회부 차장대우)/
     몸통을 구하기 위해 잘려나간 도마뱀 꼬리의 심정을 아는가. 우리사회 여
    기저기에 잘려진 도마뱀 꼬리가 애처로이 팔딱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
    나 무정하게도 몸통에는 새 꼬리가 곧 자라나고 몸통은 옛 꼬리를 까마득
    히 잊고 만다.

     그게 세상살이라고 한 마디로 툭 던져버린다면 간단하다. 그러나 고등법
    원 부장판사가 전직대통령을 도마뱀 몸통에 비유해야 할 정도로 우리사회에
    는 이 특이한 파충류에게서 꼬리를 자르는 묘한 습성을 배우는 사람이 많
    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는 것은 적이 당황하는 순간에 도망을 가기 위해
    서다. 꼬리를 자르고 뒤뚱거리며 도망가는 도마뱀의 모습은 참 우습다. 그
    리고 몸통에서 떨어져 팔딱거리는 꼬리는 참으로 애처롭다.

     안기부 예산 900여억원을 선거자금으로 불법 전용한 혐의로 기소된 전 집
    권당사무총장과 안기부 차장에 대해 서울고법은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
    의로 기소된 두 사람의 피고 중 한 사람은 검찰의 공소내용을 부인하고,
    한 사람은 시인했다. 판결은 모두 무죄로 났지만 한 사람은 웃고 또 한 사
    람은 오히려 근심어린 표정이었다. 누가 세상을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무죄로 풀려난 전 사무총장은 “인간적 의리보다 역사와 민족 앞의 진실
    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때 전 대통령과 `부자의 인연` 운운하던
    때가 있었다. 아들도 나이가 들면 아버지가 나쁜 짓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가 주는 돈은 다 좋은 일 해서 번 돈이라고 생각
    했다면 순진했다. `역사와 국민`을 생각했다면, 한꺼번에 빈 지갑에 수
    십, 수백억원을 수표로 채워주던 그 당시에 생각했어야 했다. 그리고 돈
    없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큰 돈이 무슨 돈인지 물어봐야 했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역사와 국민”이라는 표현보다
    훨씬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아들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이 되니 도마
    뱀 꼬리가 아니라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일 게다. 아들이 힘들 때 도와주지
    않는 아버지보다 인간세상에서 살아갈 자식이 더 중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도마뱀 꼬리 이야기가 현직 장·차관과 현정권의 이너서클 멤버들
    이 관련된 교수임용 청탁사건에서도 나타난다. 장관은 전혀 모르는데 차관
    이 장관의 뜻이라며 `잘 모르는` 40대 주부의 대학교수 임용 청탁에 발 벗
    고 나섰다가 문제가 제기되자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했다는 게 사건 요지
    다. 여기서는 차관이 꼬리다. 그 차관이 있던 부서에서는 인재를 잃었다고
    안타깝단다. 교수지망생 주부의 남편인 개혁 핵심 언론인의 말 바꾸기는 가
    소롭다. 현 정권의 이데올로그인 40대 의원은 `친한` 기자들과 `잡담`으로
    “교수임용하는데 전화 한 통 한 게 문제되나”라고 말했다가 이 말이 언론
    에 보도되자 언론의 몰지각을 비난했다.

     현 정권의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들이 하고 있는 행태가 바로 그
    들이 개혁해 주기를 국민이 그렇게 희망한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벌
    써 잊었나 보다. 대선과 총선을 모두 승리하고 보니 벌써 옛 정권실세들이
    하던 짓거리가 부러운가.

     이런 사건에 대한 정권측 발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뚱한 심사도 여전하
    다. 청탁을 받은 대학교수의 반박을 들어보면 청와대의 사건조사 결과발표
    를 믿는게 꼭 속는 기분이다. 전직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고등법
    원 판사가 노골적으로 지적하는 형편이니 청와대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국
    민들을 나무랄 일을 아니다. `우리는 과거와 다른 개혁세력`이라고 주장하
    지 말라. 정권이 시작할 때 개혁하지 않은 정권이 있었는가. 행동으로 신뢰
    를 얻어야 한다.

     안기부 차장을 지냈던 인물이나 현직 차관이 스스로 도마뱀 꼬리이기를
    원하는 세상이니 우리네 갑남을녀는 원하든 않든 꼬리가 되기 십상이다.
    큰 도마뱀 꼬리에 작은 도마뱀이 들어있고, 작은 도마뱀의 꼬리 속에 더
    작은 도마뱀이 들어있다. 파충류의 시대에 살면서 다음세대는 호모 사피엔
    스의 세상이 되길 기대해 본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