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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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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돌아오지 않는 청년

  • 기사입력 : 2004-06-25 00:00:00
  •   
  •  박승훈(사회부 차장대우)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6월 25일이다. 54년 전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이 전
    쟁으로 국군 5만8천여명과 미군 등 유엔군 3만6천여명이 전사했다. 또 100
    만명이 넘는 북한 인민군과 중국군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무고
    한 민간인이 남북 양측의 정권과 군인들에 의해 희생됐다.

     54년 전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숨진 사람들의 유골이 우리 주변에서 무더
    기로 발견되고, 전사했던 줄만 알았던 젊은이가 70대의 노인으로 가족 앞
    에 나타난다. 죽지 못하고 반백년을 숨죽이며 살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
    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쟁의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의미는 평가
    ·재평가되지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찢겨진 사람들의 지나간 평생은 되돌
    릴 수가 없다. 그저 억울하고 원통할 뿐이다.

     전쟁의 와중에서 또 한사람의 억울한 희생이 그저께 이라크에서 있었다.
    33살의 김선일씨는 그렇게 살고 싶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지만 결
    국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어머니 곁으로 오지 못했다. 1남 7녀의 외아들
    을 장가도 보내지 못하고 이역만리 타향에서 앞세운 그 부모의 고통을 누
    가 알겠는가. 그 부모와 가족의 한이 되어 수십년 오래 계속될 것이다.

     김씨를 살해한 이라크 저항세력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들의 행위에 대응하는 정부의 무대책이 지금 국민들을 더욱 큰 충격으로 몰
    아넣고 있다. 정부는 김씨가 언제 저항세력에 납치되었는지도, 석방협상
    을 한다는 과정에도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김씨가 피랍된 지 20일이 지나 알 자지라 보도로 저항세력
    의 요구조건이 전달되자 정부는 이라크 추가파병 방침 불변을 확인, 저항
    세력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리고 복면을 한 저항세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김
    씨를 무참히 살해했다. 정치의 틈바구니에 낀 한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되었
    다.

     정부는 김씨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히 분별해 내야 한
    다. 문제가 생기면 약한 쪽으로 희생타를 찾아내는 구태의연한 방식이 아니
    라, 왜 그 젊은이가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냉정히 밝혀야 한다. 정부는 제
    2, 제3의 김선일이 이라크 안에서 이라크 밖에서 생겨날 가능성에 대비해
    야 한다. 그런데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우리 교민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
    는데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로는 부족하다. 국민 보호의
    국가책무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의지와 실력이 동시에 있어야
    가능하다. 이 정부는 김씨의 피랍과 피살 과정에서 의지도 실력도 보여주
    지 못했다. 여기에 국민의 분노가 있다.

     이라크의 전쟁에서 왜 우리 젊은이가 죽어야 하는가. 정부는 한미동맹을
    위해(50년 전 전쟁에서 3만4천여명의 자국 젊은이를 희생하며 우리를 도
    운 미국에 진 빚을 갚기위해) 우리 젊은이를 보내야 된다고 한다. 전쟁의
    빚은 전쟁으로만 갚아야 하는가. 정부는 좀 더 열린 자세로 다양한 가능성
    과 방법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를 해야한다. 여·야 정당도 국회에 제출된 `
    파병재검토 결의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더 많은 어머니들의 눈에 피
    눈물이 나지 않도록 말이다.

     김선일씨가 피랍되기 전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이 메일에서 “이곳에서
    약자에 대한 마음도 어느 정도 몸으로 체득하게 됐고... 소름끼치는 미군
    의 만행을 담은 사진도 가지고 갈 거다. 결코 나는 미국인 특히 부시와 럼
    즈펠드, 미군의 만행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우리의 파
    병은 이라크와 아랍국가에 적대행위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라크의 복구
    와 재건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주장이 이라크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받아들여질까.

    저항세력이 이라크 국민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라크 사람들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볼 필요가
    있다. 김씨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친구에게 전한 것이 아닐까. 정부는 우리
    의 평화만큼 가치있는 다른 국민들의 평화에도 진지해야 한다. 그게 김씨
    의 희생에 조금이라도 정부가 사죄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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