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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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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피해 섬.바다 르포]
"집.어장 박살... 피눈물 납니다"

  • 기사입력 : 2003-09-19 00:00:00
  •   
  • 남해안 일대의 어촌마을들이 태풍 매미의 강타로 어장과 주택, 그리고 농
    경지 등 삶의 터전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
    마을은 온통 쓰레기에 뒤덥히고 잔해만 남은 어장시설물과 호안 방조제
    등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으며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 섬마을은 사료 썩는 냄
    새가 온마을에 진동하고 있어도 방역 손길이 미치지 않아 환자들이 발생하
    고 있다.

    18일 오후 배를 타고 42개의 유인도서가 산재한 통영연안 가운데 최근까
    지 적조와의 전쟁을 벌여온 어촌마을을 찾았다. 통영시 도남동 유람선터미
    널을 출발한 배가 통영항내에 진입하자 때마침 조류가 바뀐 바다는 스티로
    폼 등의 쓰레기 때문에 한동안 운항에 차질을 빚었다.

    통영항에서 시속 20노트의 속력으로 40여분만에 도착한 곳은 사량면 백학
    마을. 마을입구 바다에는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듯 이리저리 엉킨 빈그물에
    뼈대가 뛰어나온 가두리들이 즐비하다. 어장에서 끊긴 로프들이 바다에 떠
    다니면서 배의 스크루를 휘감아 두번이나 선원이 칼을 물고 바다속에 뛰어
    들어 줄을 끊었다.

    선창에서 온종일 복구작업을 하다 잠시휴식을 취하는 주민 10여명의 얼굴
    에는 수심뿐이다. 마을앞 도로와 해안도로는 간곳 없고 2채의 주택은 흔적
    만 남아 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하고 이들의 아픔을 적어야 할지 잠시 망
    설어진다.
    『그날의 참상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살림살이가 무엇인
    지 태풍과 해일속에서도 집을 지키려다 며느리와 4살짜리 손자를 잃을번 했
    다』는 김완식(66)씨. 결국 임신한 며느리는 너무 놀래 병윈신세를 지고 있
    지만 쉽게 낫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또 아들은 유리파편에 맞아 마산
    삼성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으며 처도 온몸에 멍자국 뿐이라며 보여준다.

    20평 규모의 마을회관은 모퉁이만 남아있고 복구지원을 나온 9명의 군인
    들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주민들과 고통을 함께하고 있다.

    12가구의 백학마을은 쓰러진 전주대 때문에 전력공급이 안돼 어류양식장
    의 사료용으로 냉동창고에 넣어둔 고기가 썩어 온마을을 진동케 하고 있어
    도 그 흔한 방역소독 한번 못하고 있다.

    마을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지하수를 뽑아올릴 전력이 없어 그동안 방치해
    온 우물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민가운데 3~4명이 설사증
    세를 보이고 있다는 장창식(64)씨는 『하루빨리 전기라도 공급되었으며 한
    다』고 조그만한 소망을 말한다.

    『이제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되었다』는 김정국(40)씨는 『8년전
    부터 마을공동양식장에서 해상어류양식을 해왔으나 값싼 중국산 수입물량
    증가와 적조 등 자연재해 등으로 빚 1억5천만원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판매
    를 앞두고 있던 우럭과 볼락 등 5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고 비통해 했
    다.

    김씨의 처 장현정(39)씨는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이 어류양식업을 해오
    면서 수협과 농협 등으로부터 돈을 빌릴때 맞(어깨)보증을 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쓰러지면 같이 쓰러질 운명이다』고 말했다.

    백학마을을 지나 양지마을까지 가는 바다에는 양지어촌계의 해상어류양식
    장 5x5m의 가두리 242조 가운데 40%가 태풍에 떠밀려가고 백학어촌계 40조
    와 능양어촌계 40조는 고기는 모두 뛰쳐 나가고 빈그물과 뒤엉킨 대형 스티
    로폼 뿐이다.

    100m짜리 40줄에 굴을 수하한 탁영곤(52·통영시 인평동)씨는 줄이 터져
    나가고 수하연끼리 뒤엉킨 어장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지 앞이 막막한지
    배위에서 한동안 장승처럼 서 있다.

    탁씨는 『지금 40줄 어장가운데 굴이 붙어 있는 줄은 20줄도 안되고 그나
    마 반이상은 탈락되고 없다』며 『통영지역은 굴산업이 지역경제의 주축이
    되고 있는데 큰일이다』고 남의 걱정을 하고 있다.

    등산객과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옥녀봉 아래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매연이
    마치 산불이 난 것처럼 높게 솟아오르는 사량섬을 뒤로하고 산양읍 연명부
    락으로 뱃길을 돌릴때 간장같은 적조가 온 바다를 덮쳐온다.

    남해안 최대의 어류양식단지인 산양읍 곤리도와 연명부락은 추석 앞날에
    도 적조로 30여만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는데 인정사정도 없이 집채
    만한 해일이 덮쳐 이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100여가구가 모여사는 연명부락은 어촌마을치고 꽤 큰 부자마을로 소문났
    지만 어류양식업의 몰락과 함께 주민들이 빚에 쪼들리고 있다.
    이 마을의 김석관(49)씨는 『선박 2척과 함께 판매를 앞둔 2년생 우럭과
    볼락 등 1억원치의 물고기를 잃었다』며 『농어촌재해대책법이 개정되지 않
    는 한 정부의 지원이 있어도 복구는 힘들다』고 걱정이다.

    주민들의 우울한 표정과 함께 지금은 연명예술촌으로 탈바꿈한 과거 연명
    초등학교에는 담벼락이 무너지고 운동장 곳곳에는 사료창고, 고기배, 뗏목
    나무, 대형부자들이 집채만큼이나 쌓여있는 풍경이 스산하기만 하다.

    다행히 서울에서 내려온 최희(27·서대문지점)씨 등 교보생명 직원 40여
    명이 일그러진 주택과 도로옆에 방치된 폐기물들을 땀방울을 흘리면서 치우
    는 모습이 아직도 어민들에게 희망이 남아있음을 일깨워주었으며 하고 기대
    하기도 했다. 통영=신정철기자 sinjc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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