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문화인물 김장생 선생
- 기사입력 : 2003-07-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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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는 조선중기 정치가이자 예학사상가인 사계 김장생 선생(1548
∼1631)을 7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고 기념사업을 펼친다.
율곡 이이 선생의 적통을 이어받아 조선 예학을 정비한 한국 예학의 종장
(宗匠)으로 추앙받는 그는 임진왜란과 호란이후 조선의 국가정신과 사회발
전 방향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선생은 아버지 황강 김계휘와 어머니 평산 신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
나 13세에 구봉 송익필에게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을 배웠으며, 20세
부터는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31세때인 1578년 선조 11년에 관직에 나갔으나 관직에 뜻을 두기보다는
학문과 저술활동 및 후진양성에 전념했다.
35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 김계휘가 세상을 떠나자, 선생은 상례와 제례
를 한결같이 「가례」(家禮)대로 하며, 이듬해에 상례에 관한 기본 지침서
인 「상례비요(喪禮備要)」를 완성했다.
그는 임진왜란을 겪는 와중에도 학문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51세에는 주자의 「근사록」을 설명한 「근사록석의(近思錄釋
疑)」를, 다음해에는 관혼상제의 예를 고찰한 「가례집람(家禮輯覽)」을 저
술했다.
선생은 어짐(仁)과 바름(義)을 도덕과 선악의 판단기준으로 삼았으며, 예
(禮)는 올바른 마음과 어진 마음을 드러내는 태도와 절차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예를 국가치란(治亂)의 관건으로 보아 예가 다스려지면 국가
가 다스려지고 예가 문란해지면 국가가 혼란해진다고 생각했다.
「조선왕조실록」은 그에 대해 『고금의 예설(禮說)을 취하여 뜻을 찾아
내고 참작하여 분명하게 해석했으므로 변례(變禮)를 당한 사람들이 모두 그
에게 질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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