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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4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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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것이 ‘지금 경남미술’이다?- 강선학(미술평론가)

  • 기사입력 : 2024-05-26 19: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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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기획은 보이는 것이고, 어떻게 보이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새롭게 해석되고 다르게 보게 만드는 그것이 예술이게 한다. 그런데 그저 나열된 수준이라면, 작품도 기획 의도도 분열되어, 미술관이라는 뒷배를 얻기보다 전시에 대한 과도한 의식(욕심)만 두드러진다.

    지난 26일까지 진행된 경남도립미술관의 ‘지금 경남미술-산 섬 들’전을 보다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했다.

    경남도립미술관은 경남미술의 지식 생산의 원천지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가 경남미술의 지식 생산의 역할일지 의아하다.

    풍경이든 정물이든 사회적 현상을 대상으로 삼든 이들은 전통적 원근법이나 단축법보다 화면 내에서 생성되는 평면성을 통해 자신만의 해석과 의미를 표현하려 한다. 조형적 탐색에 치중했거나 사회적 비판에 중점을 두었거나 간에 과도한 공간들은 작은 그림을 크게 부풀린 듯하다. 구성이랄까 배치는 해석이라 보기 힘들고, 좋은 필력은 그저 풍경화를 재탕하고 있다. 현실의 실제가 가진 갈등이나 고통은 기억이나 상처로 강요될 뿐 그저 예쁘기만 하다. 이미 표현된 현실의 복제에 가까운 800여 점의 작업도 파편화되어, 보고 버리는 후기 시장경제의 속성을 보일 뿐 패러디의 사회적 의미에 온전히 가닿지 못하고 과잉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전시연출의 맥락을 생각지 않은 작가나 작품의 선정은 보이는 것이 곧 의미가 된다는 전시연출의 기초조차 무시하는 일이다. 예술이기 위해서는 그것을 식별하는 시선과 생각이 있어야 한다. 예술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사물들을 식별하는 새롭고 모순적인 ‘다른 것’의 체계가 예술의 미적 체계다. 헤겔은 예술의 기원이 수면을 변형시키는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의 행동이라고 말한다. ‘자연적’ 외형이 가진 표면을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는 표면으로 만드는 행위 말이다. 작가는 누구나 그런 자신의 의지를 말하고 성취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 성취의 완결은 작가의 주장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 달려 있다. 때로 기획 전시로 승화되고 확장된다.

    “사실 ‘예술’은 여러 예술을 통일시키는 공동의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회화’는 한 예술의 명칭만이 아니다. 그것은 전시회 장치의 명칭, 예술이 가진 가시성의 형태에 대한 명칭이다.” ‘경남미술의 지금’은 최소한 지금 읽히는 의미들의 가치이다. 그리고 완결되지 못하는 조형적·사회적 갈등을 드러내는 가시적 형태다. 그러나 순수를 지향하든 사회적 비판을 지향하든 “예술은 그것이 사회의 구조들, 갈등들, 사회집단들의 정체성을 재현하는 방식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예술이 정치적인 것은 예술이 이 기능들에 대해 두는 간격 때문이고, 예술이 설립하는 시간과 공간의 유형 때문이며, 예술이 이 시간을 분할하고 이 공간을 채우는 방식 때문이다.”

    ‘지금 경남미술-산 섬 들’은 작가나 작품이 미술관이라는 미학적 뒷배를 얻기보다 상투적인 나열로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장식성만 두드러진다. 장식은 대중적 취향이지 예술이 아니다.

    강선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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