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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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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열다섯 살 ‘새박사’ 최수찬군

새와 사랑에 빠진 중학생 “세상 모든 새 찾아다닐 거예요”

  • 기사입력 : 2023-06-01 20: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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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물가마우지 떼 목격 계기로
    4년간 주말마다 새 찾아 출사여행
    이젠 소리만 들어도 새이름 척척
    올해 미조 ‘녹색비둘기’도 관찰
    “한국에 사는 500여종 다 담을 것”


    지난달 28일 오전 창원 진해에 있는 한 산속에서 소년이 자기 상체만큼 커다란 망원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누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와중에도 새소리를 따라 나무 사이를 시선으로 쫓길 멈추지 않았다.

    새와 사랑에 빠진 중학생, 최수찬(창원 경원중·15)군은 새소리와 모습만 봐도 이름을 아는 ‘새박사’다. “지금 들리는 ‘삐로롱’하는 예쁜 소리는 휘파람새의 울음이에요. 저 친구는 어제 찍어 놨어요. 어, 방금 나무 사이에 새호리기가 있었는데, 너무 빨리 지나가서 찍을 수가 없어요. 멸종위기종이에요. 아직 카메라에 한 번도 담은 적이 없는데….”

    4년째 새와 사랑에 빠진 최수찬군.
    4년째 새와 사랑에 빠진 최수찬군.

    비가 내리는 날에 사진 찍기가 버거워도 산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다. 우기가 있는 날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팔색조의 ‘특식’인 지렁이가 진흙 위로 올라온다. 팔색조의 모습을 담기 위해 최군은 이날 6시간을 비 내리는 산속에서 헤맸다. 결과적으로 이날은 팔색조를 만날 수 없었지만 상심하지 않았다. 그는 새호리기의 서식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소년 새박사인 최군은 매주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 5㎏에 달하는 카메라 장비들을 맨 채 버스를 타고 산과 들로 떠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갓 싹을 틔운 작은 잎사귀 사이로 번식기를 맞이해 세레나데를 부르는 새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계절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공을 차거나 게임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또래 사이에서 ‘괴짜’로 불리지만 소년에게 ‘새 사랑’은 첫사랑처럼 불가항력이었다. 4년 전 겨울을 맞은 봉암갯벌에서 우연히 만난 까만 민물가마우지떼가 상공에서 갯벌로 내려앉는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갯벌 위로 검은 파도가 내려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너무 멋있었어요. 거기다가 아프리카나 뉴질랜드 등 먼 대륙에서 날아온 친구들이잖아요. 수많은 역경을 뚫고 수천㎞를 날아다니는 멋진 삶을 알게 됐는데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최군은 그날 이후로 쌍안경을 들고 새를 찾았다. 철새부터 텃새까지 지역에 사는 모든 새를 섭렵하며 다녔다. 자연스럽게 환경과 생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매년 경남람사르환경재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연환경 곳곳을 따라다니며 새를 구경했다. 자식의 열정이 대단한 것을 안 부모는 최군에게 새를 찍을 수 있는 망원 카메라를 선물했다. 새 사랑을 마음껏 즐기되 평일에는 학업에 집중한다는 약속과 함께다. 새 사진을 찍은 지 이제 3년이 됐지만 실력은 어른 아마추어 못지않다. 같은 취미를 가진 어른 지인들도 엄지를 치켜세운다.

    뒷부리도요
    뒷부리도요
    민물도요
    민물도요
    꾀꼬리
    꾀꼬리
    녹색비둘기
    녹색비둘기
    재두루미
    재두루미

    최군은 올해, 생전 처음으로 미조(분포권이나 이동 경로 이외 지역에 나타나는 새)를 발견하기도 했다. 지난 1월 지인과 함께 찾은 함양의 한 산에서 녹색비둘기를 앵글에 담았다. 녹색비둘기는 동아시아 남부에 주로 분포하는 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에 제주도에서 한번 채집된 적이 있다. 작가들에게 미조와의 조우는 평생 한번 있을까 한 조복(鳥福)이라 불린다. 그렇기에 새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매번 새롭다.

    최군의 목표는 한국에 사는 모든 새를 자신의 눈과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한국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새는 모두 500여종. 최군은 이중 30%인 153종을 확인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평생 새를 찾아 다닐 것 같아요. 커서도 새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아직 찾아가는 중이지만, 우리 지역에서 다양한 새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일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려구요.”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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