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빈방- 양민주
- 기사입력 : 2023-06-01 08: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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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이르기를
빈방에 우두커니 앉아 웬 청승이람!
일순간, 모순
빈방은 내가 없고
청승만 있어야 한다
청승은 사람을 따르는 그림자 같은 것
내가 없고 청승만 있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었다
삶이란 존재의 부재
딸이 떠난 빈방에
청승이 앉아있다.
☞ 시를 읽다보면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시인에게 묻고 싶었다. 그런데 시인은 어떤 산문에서 이 시의 배경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풀어놓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집을 떠나 혼자 살아본 적이 없던 딸이 직장을 잡고 거제로 발령을 받아 떠났단다. 참 축하할 일인데 딸 바보 아비는 딸이 떠난 빈방에서 청승을 떨고 있다.
‘삶이란 존재의 부재’ 그래서 우리는 한 아름의 실감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손에 잡히는 그것. 눈에 가득 차는 그 무엇. 한 아름의 실감. 그 존재의 부재가 가득 찰 때 “청승은 사람을 따르는 그림자 같은 것”일 것이다.
아마 시인뿐만 아니라 이 땅의 많은 딸 바보들이 다 그럴 것이다. “딸이 떠난 빈방에/ 청승이 앉아있다” “빈방에 우두커니 앉아 웬 청승이람!” 아내의 핀잔이 오히려 따뜻하다. 시인의 눈에 맺힌 눈물 자국이 손에 잡힐 듯 훤하다.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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