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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스스로 ‘나’를 위로하자- 하헌주(시인·밀양문학회장·경남작가회의 이사)

  • 기사입력 : 2023-02-01 19: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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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위(自慰)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한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뜻(masturbation)도 있지만, 여기서는 위로(慰勞)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남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달래 주려고 따뜻한 말이나 행동을 베푸는 데에는 참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작 자신을 위로하는 데에는 인색한 경우가 많다. 굳이 통계를 말하면, 코로나19 발생 첫해인 2020년 극단적 선택이 전체적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30대 청소년·청년층 비율이 증가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위로하지 못한다는 것과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것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위로를 한다는 것과 받는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 민족성은 받는 것보다는 하는 것, 곧 주는 것에 길들어져 있다. 그것이 참이라 생각하고, 이유 없이 받는 것은 왠지 미안하고, 어색하고 경상도 말투로는 어렵다고 느낀다. 궁극적으로 남을 위해 봉사와 희생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뿌듯한 보람과 행복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라는 공동체의 목적성과 연관이 깊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남에게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성원이다.

    그러나 결국 혼자서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모든 예술의 뿌리는 자기 위로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지향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에 공감하고 감동으로 이끄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일 것이다. 결국, 있는 그대로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것이 예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나머지는 자신에게 가장 걸맞은 예술의 장르만 선택하면 된다.

    그렇다. 우선, 나를 사랑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부족한 내 모습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다. 누구나 불완전한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구도 신의 경지가 될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 하고 가는 인간은 없다. 다만, 얼마나 그것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가, 그 가치를 알고 조금이라도 실천하려는 태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러니까 시시때때로 나를 위로해주어야 한다. 조금의 노력과 실천에도 선물을 주어야 한다. 참과 거짓의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오늘 하루도 잘 견디고 있는가. 우주의 가장 위대한 결정체인 ‘나’에게 충실히 하고 있는가. 오늘도 수고한 저녁 귀갓길에는 나를 위해 어떤 위로를 할 것인가 고민해 보라. 그럼으로써 지금이 또 다르게 느껴질 것이 틀림없다.

    필자는 오늘 저녁 삼문동에 있는 ‘호박동동주집’을 가리다. 그곳에서 오래 헤어졌던, 사랑했던 이름들을 한명씩 속으로 부르리라. 한 사람마다 한 잔씩 비우며 나를 위로하리라. 거나하게 취하겠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으리라. 이미 사라진 새들의 울음소리가 휘파람을 부르며 함께 귀가하리다.

    하헌주(시인·밀양문학회장·경남작가회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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