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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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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교급식,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자- 정규헌(경남도의원)

  • 기사입력 : 2023-01-25 19: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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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급식은 언제나 뜨거운 화두였다. 적어도 경남에서는 그러했다. 2015년 무상급식 문제로 경남도와 경남교육청이 충돌해 전국적 이슈가 되었고, 지난해에는 식품비 분담률을 두고 경남도의회와 경남교육청 간 공방이 일었다. 그러나 이 논의들의 초점이 ‘급식에 쓰이는 돈을 누가, 얼마나 지불하느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비용문제에 대한 논의를 마쳤다면, 조금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해볼 차례다. 바로 지역에서 생산된 싱싱한 먹거리가, 정상적인 유통구조에 따라, 제대로 각급 학교에 공급되고 있는지 검증하는 문제다.

    학교급식에 쓰이는 각종 식재료는 제조사(생산자)로부터 대리점을 거쳐 유통사를 통해 일선 초·중·고에 납품된다. 유통사는 학교급식전자조달시스템(eaT)을 통해 입찰에 참여하고, 도내 학교 입찰에는 경상남도 내에 주소지를 둔 업체만 참여가 가능하도록 지역제한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지역 상권 보호와 함께 지역에서 생산된 싱싱한 식재료를 아이들에게 먹이겠다는 지역사회와 교육계의 의지가 담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선의(善意)의 시스템이 다소 혼탁해지고 있다. 주소지만 경남에 둔 타 지역 업체들이 도내 유통사인 척 입찰에 참여하는 ‘위장업체’ 난립 때문이다. 경남교육청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10건의 의심 신고가 들어왔고, 실사 결과 이 중 7곳이 위장업체로 드러났다. 해마다 평균 10곳 정도의 유통사가 위장업체로 판명되는데, 이 수치는 신고가 접수된 업체에 대해서만 조사를 벌여 집계된 수치임을 감안할 때 실제 위장업체의 수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상권 잠식과 유통구조의 왜곡 문제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제품이 무분별하게 도내 학교급식에 유입돼 아이들의 밥상에 오를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일부 유통사의 부정당 행위도 심심찮게 도마에 오른다. 규격에 맞지 않거나 신선하지 않은 식재료를 납품하고도, 학교 측이 검수를 강화하거나 교육청으로부터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을 경우 “제품에는 문제가 없는데, 영양교사, 영양사가 권한을 남용한다”며 역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업체들로 인해 일선 학교의 고민이 깊다는 게 교육청의 전언이다.

    때문에 행정안전부는 품질이 검증된 제품을 영양교사와 영양사가 입찰 과정에서 지정할 수 있도록 예규로 정하고 있으나, 실제 학교에서 이를 적용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정 제품을 지목하는 것 자체가 부정 청탁 등 유착의 위험성을 내포하면서 청렴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좋은 식재료를 엄선하는 일이 청렴하지 않다는 낙인을 찍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에 경남교육청은 각 학교마다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친 경우에 한해 특정 상품을 단수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역의 좋은 먹거리를 학교에 공급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울 필요가 있을까?

    필자는 최근 경남교육청에 일제점검을 통한 위장업체 단속과 납품업체 부정당 행위 사례를 취합해보자고 제의했다. 2월 중에는 도내 18개 시·군의 대표성을 띤 영양교사와 영영사, 조리사, 학부모회 급식모니터링단이 참여하는 간담회도 기획 중이다. 엄중한 단속과 기탄없는 의견교환을 통한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새로운 논의를 시작해보자. 학교급식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질문을 해보자.

    정규헌(경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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