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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경남을 보다] 3. 본지 ‘육아 아빠들’의 육아휴직기

  • 기사입력 : 2023-01-17 08: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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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2021년 성인지 통계 보고서를 보면 경남 도민의 59.3%가 성별 가사 분담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응답했지만, 실제 공평하게 가사를 분담하는 가구는 약 12%에 그쳤다.

    육아는 어떨까. 육아휴직을 단면으로 놓고 봤을 때 남성의 경우 2018년 1478명에서 2020년 1805명으로 22.1%(327명) 늘었으며, 전체 육아휴직급여 수급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8년 30.6%에서 2020년 32.4%로 1.8%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육아휴직 통계’에서도 전국 육아휴직자 17만3631명 중 아빠 육아휴직자가 4만191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엄마 육아휴직자가 전체의 75.9%로 성별 격차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또, 정부의 ‘경력 단절 여성 경제활동 실태조사’(2019년)를 보면, 육아휴직 후 직장에 복귀한 여성은 43.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 격차가 뚜렷한 상황에서 여성 고용률 그리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육아휴직 기간만을 늘리는 정책보다 육아 공백 이후 여성을 안 뽑는 ‘차별’을 없애고, 휴직 급여를 늘리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제 육아휴직을 각각 1년씩 사용한 경남신문 ‘육아 대디’들은 어떤 현실을 엿봤을까. 통계의 당사자이면서도 통계에는 담기지 않은 ‘경남 아빠’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리=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아빠와 딸 단둘 1차 여행 때 광주 무등단 케이블카에서 아이가 무섭다며 꼭 안겨 있다./조규홍 기자/
    아빠와 딸 단둘 1차 여행 때 광주 무등산 케이블카에서 아이가 무섭다며 꼭 안겨 있다./조규홍 기자/

    세 살 딸과 지지고 볶고 사랑했지만…‘생활비 벽’은 높았다

    조규홍 경제부 기자

    ◇전쟁 같은 사랑= 육아휴직을 놓고 미혼의 친구들과 후배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 ‘안식년 같다’는 것이다. 틀린 말이다. 안식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와의 추억과 두툼한 애정은 얻었다.

    지난 2021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육아휴직을 가졌다. 당시 아이는 만 3세 전후였다. 말은 유창하고 자기주장도 확고해지는 시기이지만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나이. 언쟁이 처음 시작되는 때이다.

    아이와 함께 야경을 봤던 날. 이날 '아빠 별이 하늘 밑에도 있어'라는 말을 들었다./조규홍 기자/
    아이와 함께 야경을 봤던 날. 이날 “아빠 별이 하늘 밑에도 있어”라는 말을 들었다./조규홍 기자/

    아이와 하루에 열 번은 싸웠다. 우리 애는 △오전 6시 기상 △오전 9시 어린이집 등원 △오후 4시 하원 △오후 8시 30분 잠자기 거부 등의 하루 일과를 갖고 있다. 아내는 회사 일을 하며 석사 논문도 쓰고 있어서 육아와 가사는 거의 내 몫이었다. 아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만, 밤에 재우는 건 정말 전쟁 같았다. 재우기 말고도 밥 먹기(과자 맛을 알아버린 후 밥 자체를 거부한다.), 제때 제 옷을 입히기(한겨울, 한여름에 반대의 옷을 입으려 했다.), 씻기, 과도한 쇼핑 자제, 무제한 바깥 놀이 만류하기 등 하루에 부녀가 토라지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또, 우리 아이가 마트 바닥에 누워 떼쓰지 않을 거란 예상은 헛된 것이었다.

    수많은 토라짐 속 사랑도 꽃피웠다. 집 근처 산에 올라 야경을 바라보며 “별 들이 하늘 밑에도 있어”라는 아이의 말은 가슴 속 깊이 남았다. 또, 아빠와 딸 단둘만의 여행을 세 번 다녀온 이후에는 “아빠 또 우리 여행 언제가?”라는 말을 거의 매일 듣는다. 휴직하지 않았다면 듣기 어려웠던 말들이다.


    하루만 집 정리를 게을리해도 이꼴이 된다./조규홍 기자/

    ◇생활비 쪼들리지만…= 육아휴직급여를 휴직 후 첫 석 달에는 112만원, 나머지 달에는 70만원씩 받았다. 맞벌이를 하고 있지 않다면 이 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이 돈으로 한 달 가계 운영비와 전기, 가스료 등을 냈다. 개인 용돈은 얼마 남지 않았으나 아내 급여 지원 없이 살았다. 쉽지 않았다. 갖고 싶은 물건 1위인 자전거, 4년 넘게 쓰고 있는 휴대폰 구매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옷도 안 샀다. 배달 음식은 최대한 자제하고 집밥을 해 먹었다. 최근 관심받고 있는 ‘짠테크’를 이때부터 했다.

    지출이 가장 많은 40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육아휴직은 소득 면에서 선뜻 다른 사람에게 권하기 어렵다. 소득 대신 아이와의 관계를 선택했기에 가능했다.

    2006~2021년 사이 정부가 투입한 저출산 재정은 38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출생률은 반등할 기미가 없이 해마다 감소한다. 청년들이 아이를 키울 미래는 불확실한데 자신이 자라면서 본 부모님들의 고생은 확실하게 각인돼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청년들 자신의 불확실성을 아이에게 대물림할 수 없다는 의지의 발현이 출생률로 나타난 게 아닐까.

    저출산 대책을 장기적으로 변함없이 가져가야 한다. 정부가 대책을 매년 조금씩 바꾸며 이것 없애고 저것 조금 늘리는 꿰맞추기로는 답이 없다. 정부가 ‘우리가 뒷배가 되겠다’는 신뢰를 먼저 구축해야 청년들도 결혼하고 애를 낳고 남녀 공평하게 육아휴직을 쓰지 않을까.

    글·사진= 조규홍 기자


    육아휴직 전 가족과 함께 찾은 여수 돌산. 수평선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다.
    육아휴직 전 가족과 함께 찾은 여수 돌산. 수평선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다./이한얼 기자/

    늘어나는 아이 걸음 수만큼 행복했지만… ‘지원 정책’ 아쉽다

    이한얼 뉴미디어부 기자

    ◇아빠가 되고 육아휴직을 결심하기까지= 출산 전 마지막 태동 검사를 위해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평소 누구보다 겁이 많던 아내였기에 배를 가르는 수술 전 느끼는 긴장이 지켜보는 것만으로 고스란히 전달됐다. 하지만 아내의 겁먹은 손이 솟은 배 위로 얹어지자 조금씩 떨림이 잦아들었다. 10개월을 품으며 생긴, 아빠는 알 수 없는 모녀간의 유대감이리라. 수술 시작 약 30분 만에 수술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가 밀고 나온 침대에서는 태지(태아의 몸 표면을 싸고 있는 회백색의 지방과 같은 물질)도 채 떨어지지 않은 작은 생명이 약동하고 있었다. 2020년 9월 29일 오전 11시 42분, 나는 아빠가 됐다.

    아내와 나는 일반적인 부부와는 조금 다르다. 결혼 이후 함께 지낸 날보다 떨어져 지낸 날이 배는 많다. 우리는 주말부부다. 항간에는 주말부부가 되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적어도 신혼부부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듯하다.

    아내는 각별히 주의가 필요한 임신 기간에도 시간 대부분을 홀로 버텨야 했고, 출산 후에는 수유 준비와 뒷정리까지 도맡아 1시간에 한 번 바위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려야 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아내는 딸아이의 미소를 보며 고통보다 더한 행복으로 시간을 채워갔고, 어느 날 휴대전화로 동영상 하나를 전송했다.

    “아빠!”

    딸에게 처음으로 불린 그날, 아이의 성장을 매일 옆에서 함께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아내의 출산·육아휴직 막바지인 생후 15개월 무렵 나도 휴직계를 제출했다.

    아이의 첫 서울 어린이 대공원 방문. 혼자 지도를 보며 걸어가는 뒷모습에 뭉클해진 기억이 있다.
    아이의 첫 서울 어린이 대공원 방문. 혼자 지도를 보며 걸어가는 뒷모습에 뭉클해진 기억이 있다./이한얼 기자/

    ◇다시 돌아가도 또 한 번= 내가 육아휴직을 시작한 당시 아이는 걷고, 뛰고, 기본적인 단어 몇 개와 좋고 싫음의 의사 표현이 가능한 시기였다. 아이의 걸음 수가 늘어날 때마다 아이의 세상은 한 걸음씩 확장됐고, 그만큼 육체적 고단함도 조금씩 늘어갔다.

    그럼에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딸의 모습은 육체의 피로감보다 몇 배는 큰 정서적 행복을 가져다준다. 아침마다 침대로 올라와 얼른 일어나서 놀아달라고 할 때면 그 많은 아침잠은 간데없어지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즈음엔 “아빠, 왜 힘이 없어 보여?”라는 한마디에 기운이 나곤 한다.

    아빠의 육아휴직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문화는 물론 여러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아빠의 육아휴직에 친절한 사회가 아니다. 부모에게, 특히 주말부부에게 부모 합계 2년의 기간은 결코 충분하지만은 않다. 국가공무원법을 적용받는 공무원이나 교원에 비해 기간이 짧을뿐더러, 회사와의 합의를 통해 무급으로 연장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대다수 직장에서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 문제는 또 어떤가. 맞벌이 부부인 우리도 휴직 기간 카드 명세서를 보며 한숨을 내쉰 날을 셀 수가 없는데, 외벌이 부부에게 육아휴직은 사실상 이용 불가능한 제도일 것이 자명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빠가 깨기만을 기다리던 딸의 하루는 이제 아빠가 언제 집에 오냐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루하루 아빠가 올 날을 세어가며 기다릴 딸을 생각하면 과거로 돌아가도 고민 없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것이 틀림없다. 앞선 아쉬움에 대한 법령의 개정과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금상첨화다.

    글·사진= 이한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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