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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틀 걸려 쓴 詩 가격이 1만4000원이라네요- 도희주(동화작가·경남문학 편집장)

  • 기사입력 : 2022-12-19 21: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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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고 다시 확인해도 분명 1만4000원이었습니다. 너무 모욕적이라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물론 처음 청탁할 때 원고료가 적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상식이라는 게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지요. 차라리 재능기부 형식으로 기부해달라고 했다면 흔쾌히 무료봉사했을 것입니다. 시 한 편을 곰탕 한 그릇 값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작가를 이런 식으로 능멸해도 되는 건가 싶어 경남교육청 과학교육원 ‘과학경남’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규정이 어쩌고 하면서 얼버무립니다.

    시 한 편 쓰려면 착상하고 초고에서 몇 회 걸쳐 퇴고하면서 완성도를 높여 가다 보면 최소한 이삼일은 집중해야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문화예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각적으로 문화예술의 파이를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지자체의 절대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화예술은 국가적 특성도 중요하지만 각 지역의 고유한 특색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바탕으로 생성된 개성 있는 문화예술이야말로 세계인이 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경제의 강력한 인프라가 되는 시대입니다. 지금 한류가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되면서 혜택을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이 누리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근대 초기 미국은 자국의 팝송과 통기타, 햄버거와 청바지 문화를 들고 각국의 젊은 층에 어필했습니다. 그렇게 시장을 연 다음 TV와 냉장고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들을 내다 팔았지요. 지금은 문화를 먼저 팔고 상품을 파는 것은 수출경제의 상식처럼 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가 한국의 영화·문학·음악에 열광하며 덩달아 한국 상품들도 주가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화예술의 힘입니다. 각 나라는 물론 지자체별로 자신들의 문화예술을 키우고 세계화하는 데에 각고의 노력을 쏟아붓습니다. 그런데 이틀 걸려 완성한 시 한 편을 ‘나랏님’이 1만4000원으로 가격을 매겼습니다. 그것도 우리 아이들을 맡아서 교육한다는 교육청이 말입니다. 선생님들께 묻겠습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시 한 편 가격은 1만4000원’이라고 말할 자신이 있습니까. 국가나 지자체가 문화예술인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줄 때 국민도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작가의 창작 의욕도 고취되어 더 나은 작품들이 나올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문학작품은 다양한 콘텐츠로 분화하면서 세계로 향하고 있습니다.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망정 예술인들의 의욕과 자존심에 재를 뿌리는 무지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은 하지 말아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도희주 (동화작가·경남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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