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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8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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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밥벌이學 교수의 퇴근길- 이상화(영산대 교수)

  • 기사입력 : 2022-12-04 19: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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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 질 무렵 집으로 향하는 양산 회야강 변 퇴근길, 나는 길게 누운 그림자와 함께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논밭 사이를 걸었다. 오늘따라 함께 걷는 그림자가 왠지 쓸쓸해 보인다. 걸음걸이도 힘이 빠지고 옆에서 보니 굽은 등에 숱 없는 머리도 완연하다. 그림자도 그새 나이를 드셔서 좀 쉴 때가 되었다. 잠시 쉬어가라고 산책로 옆 벤치를 찾아 앉는다.

    나는 밥벌이學 교수다. 웬 밥벌이學? 하시겠지만 원래 밥벌이란 먹고사는 업(業)을 일컫는 말이고 나는 대학원에서 학생들의 먹고사는 일인 취업과 창업을 연구하고 있으니 그다지 이상한 말은 아니다. 가끔 집사람에게 “정작 본인 밥벌이에는 낑낑대면서 누가 누구에게 밥벌이 방법을 가르치냐”는 타박도 듣지만 어쨌든 나는 밥벌이學 교육자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부의 취·창업교육은 ‘행복한 밥벌이를 위한 역량교육’이다. 여기서 행복한 밥벌이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일’을 의미하며, 교육의 핵심은 학생들의 ‘원하는 일’을 같이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취·창업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본인이 원하는 일에만 관심을 둘 뿐 회사나 사회가 원하는 바에는 무관심이다. 이러니 입사일 퇴사 현상도 공동창업 프로젝트 중 무단 하차도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육방식은 문제가 많다. 애당초 ‘행복한 밥벌이’란 없다. 동서고금 이래로 모든 사람에게 밥벌이는 지겹고 고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도 툴툴대며 견디는 이유는 우리 삶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밥벌이의 본질이며, 밥벌이 교육의 핵심 가치인 것이다.

    우리 부모 세대가 온갖 어려움을 견디면서도 밥벌이에 헌신하신 것은 당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나가야 했던 가족과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겹고 어렵고 때론 넌덜머리가 나도 그분들의 하루 세끼 밥벌이가 마침내 2022년 선진 대한민국의 밑그림을 그린 것이다. 하루 세끼 밥벌이가 숭고하고 존엄한 이유이다.

    그때 길게 누운 그림자가 내게 물었다. “요즘 당신 밥벌이는 어때?”

    이상화(영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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