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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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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우리는 왜 극단으로 가는가?- 이재달(전 MBC경남 국장)

  • 기사입력 : 2022-11-30 19: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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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은 쏜살같다. 2022년도 달력을 내건 지가 엊그제 같은데, 달랑 한 장 남았다.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없었지만, 올해도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큰 변화가 있은 한 해다. 연초부터 선거 열기로 뜨거웠다. 4월의 대통령 선거는 그야말로 사생결단이었다. 결과는 알다시피 아슬아슬한 표 차로 윤석열 후보가 승리했다. 이어서 두 달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국민의 힘이 압승을 거두었다. 양대 선거를 치르는 와중에 쏟아져 나온 말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섬뜩하고 살벌했다. 대선 당시 야당의 당내 경선이 그렇고, 본선은 물론 이보다 훨씬 더했다. 여,야 양대 정당이 구사한 네거티브 전략은 진흙탕이나 진배없었다. 듣기조차 민망한 말들이 스스럼없이 뿜어 나오던 날이었다.

    기사의 댓글도 그렇다. 우파 논조의 기사에는 좌파의 댓글이, 좌파적 시각의 기사에는 우파의 댓글이 저주와 비아냥으로 도배된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절제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 평론한다는 유튜브 방송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큰일 났다”든지, “죽기 직전”이라든지 거친 표현으로 설레발친다. 별 하찮은 소문을 주워와서 난리법석을 떤다. 인신공격이네, 명예훼손이네 하며 타박하기에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수준 미달이다.

    우리는 왜 이처럼 극단적 표현을 써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극단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가?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해야만 우리의 의사와 행위가 표현되는 것일까? 이 시대, 우리는 왜 끝없이 극단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먼저, 평범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밋밋한 언어는 읽히지 않고, 예사로운 행동은 눈길을 끌지 못한다.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극단으로 흘러가고 있다.

    둘째, 정보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 ‘참’이라고 믿는 것을 확증하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확증편향의 확산이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이 부채질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콘텐츠로 넘쳐나는 1인 방송 매체는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소비자의 확증편향 심리를 극단적 표현으로 자극한다. 1인 방송의 급속한 성장과 확증편향의 심리가 상호작용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극단적인 표현이 일상화된다.

    셋째, 표현에 대한 책임 의식의 부재다. 표현의 자유는 마땅히 보호되어야 할 헌법상의 권리다. 다만, 그것은 팩트에 근거해야 하며, 적어도 팩트와 유사한 준 팩트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임에도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마구 던진다. 그리고 그것을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믿어주는 같은 진영이 있어, 자기 말과 글에 대한 책임 의식은 뒷전인 채 더욱 신이 나서 극단으로 나간다.

    오는 말과 가는 말이 작용과 반작용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극단적으로 흘러간다. 특히 한 집단에 소속되어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때 더욱 그렇다. 그 이유를 캐스 선스타인은 “집단 내 다른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호의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실제 자기 입장보다 더 열렬하게 집단 주류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설명한다. 집단에 소속되면 더 극단으로 치우치는 까닭이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계절이다. 류시화 시인이 전한 따뜻한 일화다. 환경운동가 조애나 메이시가 마시던 찻잔에 파리 한 마리가 빠졌다. 그녀는 그냥 마실 수 있다는 뜻으로 일행들에게 노 프라블럼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있던 티베트 승려 최걀 린포체는 조심스럽게 파리를 건져 나무 잎사귀에 얹어 놓은 뒤 파리가 무사히 날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파리가 날아가자 비로소 환하게 웃더란 것이다. 세상을 재단하는 기준을 최걀 린포체처럼 나 아닌 타인에게 둔다면 우리가 마구 극단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재달(전 MBC경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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