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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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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빨래터- 조현술

  • 기사입력 : 2022-11-24 08: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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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심한 바람결이 돌팍에 칭얼대면

    문명에 업혀 온 세탁기가 미욱스럽다

    그날의 방망이 소리 아프게만 젖어오오


    축하객 빠져나간 공허한 식장처럼

    찬 바람 몰아치고 낯선 햇살 일렁이면

    서러운 세월 모서리 눌린 가슴 쓸어안네


    가슴을 쓸어안고 빨래터를 지키지만

    그리움 다독이며 씹어보는 고독인데

    애끓는 바람 소리는 아낙네의 울음이오


    ☞이 시조를 읽고 박수근의 그림 ‘빨래터’가 떠올랐다. 칠하고 긁어내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돌처럼 굳어진 화면에 그린 박수근의 빨래터. 여인들이 냇가에 앉아 빨래를 하면서 옆의 여인과 나누는 친근한 목소리가 귀에 들릴 듯한 정겨운 작품이었다. 이 시조는 박수근의 빨래터에서 그 여인들이 사라진 후의 쓸쓸하고 애잔함을 그린 듯한 느낌이다.

    세탁기의 기계음을 듣고 떠오른 빨래터의 방망이 소리. 그 옛날의 빨래터에 혼자 있는 아낙은 ‘찬 바람 몰아치고 낯선 햇살이 일렁이는’ 늦가을의 빨래터에서 서러운 세월의 흔적을 쓸어안는다. 노동의 힘겨움과 고독에 가슴 저리는, 기억 속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손수 지은 옷을 빨래터에서 두들겨 빨아 자식에게 입혀 주었던 어머니. 세월 따라 인정도 떠나고 자식도 멀어져 버린 빨래터에 ‘애끓는 바람 소리’가 어머니의 울음을 달랜다. 빨래터에서 까마득히 떠나간 자식들은 그 시절의 방망이 소리를 기억하기나 할까.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세월의 때를 씻어내고는 있을까.

    꽃잎이 지고 나서야 꽃이 있었음을 아는 것처럼, 우리는 무엇인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것이 그리워지곤 한다. -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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