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가고파] 살림하는 여자- 강지현(편집부장)

  • 기사입력 : 2022-11-22 19:38:17
  •   

  • 기억 속의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다. 부업·돌봄·봉양은 기본이요,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집안일을 했다. 밥·설거지·청소·빨래.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일은 끝이 없어 보였다. 종일 소처럼 일했지만 아무도 주부를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가사노동은 ‘일’로 쳐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살림과 돌봄은 공짜였다.

    ▼엄마가 된 딸은 이제 안다. 살림은 누군가를 살뜰히 먹여 살리는 일이란 걸. 살림이 ‘살리다’는 뜻의 ‘살림’에서 왔다고 믿는다. 주부를 ‘놀고먹는 사람’ 취급하거나 집안일을 ‘하찮은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희생과 봉사라는 말로 가볍게 퉁쳐버린 엄마들의 가사노동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집안일은 ‘무급 노동’이 아니라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가치 있는 일’이다.

    ▼부부가 공평하게 가사분담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긴 했지만 현실에서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 몫이다.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여성이 3시간7분으로 남성(54분)보다 3배 이상 많았다.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무려 490조9000억원(2019년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5.5%에 달한다. 1인당 가사노동 가치는 여성이 1380만원으로 남성(521만원)의 2.6배다.

    ▼아버지가 아닌 딸이 가장인 집안을 모티브로 한 이슬아의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엔 엄마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 슬아가 나온다. 가부장(家父長) 시대엔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았던 살림노동에 가녀장(家女長) 슬아는 고용이라는 형태로 값을 매겨 돈을 지불한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들을 잘 살아 있게끔 만들어’ 온 ‘살림의 상냥함’에 경의를 표한다.

    강지현(편집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강지현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