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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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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문세권 소확행- 황숙자(김해시 노인장애인과장)

  • 기사입력 : 2022-11-21 18: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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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바뀐다. 집 부근을 걸어서 5분이나 10분 내 누릴 수 있는 것을 지칭하는 신세대 용어가 있다. 대표적으로 숲세권(공원 근처), 역세권(역 근처), 수세권(강이나 바다 근처), 슬세권(도서관, 우체국 근처) 등이다.

    의도하지 않게 25년째 문세권(문화유적지 근처)에 살다 보니 위에 말한 권리를 모두 누리고 있다. 수로왕릉역을 바로 앞에 두고 수릉원, 해반천, 백화점에 보너스로는 보건소까지 가까이 있다. 한 가지 단점은 집이 노후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신상 주택에 살고 싶어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재산증식을 위해 쉽게 사는 곳을 옮긴다. 집이 재테크의 수단이 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집 주위의 좋은 환경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집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외지인들이 김해를 찾아오면 함께 수로왕릉을 포함해서 집 주위를 산책한다. 얼마전 해운대 사는 지인이 놀러 왔다. 수로왕릉 담장을 함께 걸으면서 “덕수궁 돌담길은 복잡한데 이렇게 조용하게 돌담길을 걸으니 너무 좋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면서 해운대는 관광지로는 한 번쯤 놀러 다니기 좋은데 살아가기는 복잡해서 살기에 좋지 않다며 “자기는 복 받은 사람이야”라고 했다.

    거의 매일 수릉원 근처에 사는 친구들과 호젓하게 산보를 즐긴다. 그러면서 우리 마음대로 부르고 이름을 근사하게 바꿔놨다. 멍 때리기 좋은 벤치 옆 갈참나무는 ‘보리수’로 부르고, 작은 연못 사이에 놓인 무명 다리는 ‘오작교’라고 부른다. 대성동고분군은 ‘몽마르뜨 언덕’이라고 이름 짓고 우리끼리 약속장소를 정한다.

    대성동고분군은 작은 언덕이지만 도심에 위치하여 시내 경관이 시원하게 보인다. 봄에는 초록으로, 가을 겨울에는 갈색으로 덮여서 여백의 미가 빼어나다. 또한, 멀리 바라다 보이는 경전철과 고층 아파트가 과거와 현재의 공존하는 묘한 느낌을 주며 ‘사진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다. 걸어서 10분 거리 내 금관가야 문화권에서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산다.

    황숙자(김해시 노인장애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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