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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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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보며] 선출직, 교도소 담장 위를 걷다- 이상권(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2-11-14 19: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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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전 모 정치인이 털어놓은 ‘비사(事)’다. 그는 ‘은밀한 거래’가 필요한 조력자는 이른 아침 목욕탕에서 만났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조직이나 자금 등 민감한 사안을 논의할 때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내밀한 대화의 녹음 우려 때문이다. ‘오늘의 동지가 언제 적으로 바뀔지 모르는’ 게 험난한 정치판이다.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은 다반사다. 대가성 요구나 정치자금의 흐름은 자칫 당선 후 ‘아킬레스건’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살얼음판을 걷듯 몸조심했기 때문인지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곤욕을 치른 적 없이 ‘무사히’ 정치 인생을 마감했다.

    선거는 엄밀하게 조직과 자금력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이에 출마자에겐 곳곳에 달콤한 유혹이 도사린다. 한 발만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검은손’을 맞잡는다.

    ‘정치인에게 돈은 생선과 같다’는 말이 정치권에 회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생선에는 가시가 있기 마련이니 목에 걸리지 않게 잘 발라가며 먹어야 한다는 비유다. 특히 큰 가시, 즉 거액의 정치자금 수수는 늘 뒤탈을 염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여기에 더해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말은 고전(古典)이 되다시피 했다. 자칫하면 교도소 담장 안으로, 운(運) 좋으면 담장 밖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은 없기 때문에 나온 경구(警句)다. 정치인이 죄의식 없이 ‘미필적 고의’의 유혹에 빠지는 건 자기합리화에 기인한다.

    갈수록 정치 상황은 바뀌고 유권자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뭉칫돈이 돌아다닐 만큼 여유도 없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검은돈은 여전히 돌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만큼 더 교묘하고 어둡게 숨어들었다는 얘기다.

    지난 6·1 지방선거 선거사범 공소시효(12월 1일)가 임박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일 테다. 도내 18개 시·군 절반인 9명의 단체장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정치자금법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도 다양하다. 도내 국회의원 2명도 수사 대상이다. 국민의힘 하영제(사천·남해·하동) 의원은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국회의원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당했다. 같은 당 서일준(거제) 의원은 지방 선거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만약 검찰 기소에 이어 재판이 진행된다면 본인은 물론 유권자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된다. 나라일 잘하라고 뽑았는데 임기 내내 업무 공백이 불가피하다. 교도소 담장 안에 떨어지지 않으려 법정 다툼에 진력(盡力)할 수밖에 없다.

    ‘입은 풀고 돈은 묶는다’는 선거법 대명제는 현장에선 별로 신통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자유로운 선거운동과 시민 참여를 가로막는 걸림돌 정도로 인식한다. 고비용 저효율 선거풍토를 바꿔보자는 취지는 빛이 바랬다. 인물과 정책 중심의 포지티브 방식이 되도록 재정비해야 한다.

    원천적으로는 선출직에 나서는 이들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스스로 경계하며 사소한 일에도 신중해야 하는 게 공직자의 최우선 덕목이다. 중국 전국 시대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의 말이다. ‘태산에 부딪혀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다만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작은 흙더미다.’

    이상권(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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