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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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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52) 절롱위권(竊弄威權)

- 위세와 권력을 훔쳐 마음대로 한다

  • 기사입력 : 2022-10-25 08: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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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한학연구원장

    모택동(毛澤東)이 연안에 있을 때 연극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 “저러니까 혁명을 해야 돼!”라고 고함을 쳤다. 연극 내용인즉 가난한 농가에서 아들은 전쟁터에 끌려 나가고, 늙은 어머니 혼자 사는데, 공무원들이 와서 심하게 세금 독촉하는 내용이었다.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은 오랜 투쟁 끝에 공산당 정권을 수립했다. 혁명해 통치자가 된 가장 큰 목적은, 압제와 착취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구호이고, 실제로는 권력에 대한 야욕이 더 컸다. 권력을 잡은 뒤 민심을 얻을 몇 가지 조처를 했다. 서양 열강들의 세력을 다 몰아냈다. 사유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했다. 마약 도박 매음 등을 다 없앴다. 모든 백성들에게 직업을 다 제공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투쟁할 줄만 알 뿐 나라 다스릴 줄은 몰랐다. 정책마다 실패를 거듭해 1958년부터 1961년 사이에 양식이 모자라 500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

    동지들은 모택동이 4년, 길어도 8년 정도 하고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러나 종신토록 최고 권력을 누렸다.

    경제를 아는 유소기(劉少奇), 등소평(鄧小平) 등이 비판하고 나서자, 형식적인 자리인 국가주석은 유소기에게 양보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거슬리는 사람은 우파(右派)로 몰아 추방하고, 1966년에는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대혼란으로 몰아넣고, 홍위병 등을 시켜 거슬리는 사람들은 전부 죽이거나 추방했다. 이때 유소기는 홍위병들에게 맞아죽었고, 등소평은 시골 트랙터 공장 직공으로 쫓겨났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선전에 백성들은 그런 줄 알았는데, 1976년 개방을 해 보니,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1978년 등소평이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또 최고 지도자의 임기를 5년으로 정하고 1차 중임해서 10년 하고 물러나도록 정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쟝져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이 10년 만에 물러났다.

    오늘날의 중국으로 발전시킨 가장 큰 공신은 강택민이다. 그는 외국어 국제금융 전자공학에 정통하다. 모택동 때 안 되던 경제와 외교에 다 성공했다.

    매년 경제성장률 10% 이상, 미국 등 서방 여러 나라와 친선 관계 유지, 홍콩 반환, 올림픽 유치 등이 다 그의 치적이다.

    중국과 미국의 친선은 우리나라 경제에 아주 도움이 되고, 또 우리나라를 아주 편안하게 해 준다.

    시진핑(習近平)이 집권하여 헌법을 고쳐 영구집권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백성들의 자유도 많이 제한하고, 미국과의 관계도 최악으로 만들어 놓았다.

    독재체제를 구축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로 만들어 갈 것 같다. 한 사람의 과도한 집권욕이, 앞 시대 지도자들의 공적까지도 다 허물고 국제평화를 파괴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竊(=절) : 훔칠 절.

    * 弄 : 희롱할 롱.

    * 威 : 위엄 위. * 權 : 권세 권.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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