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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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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 마산어시장 알바들] (2) 생선가게

생선 손질 ‘40년 내공’ 따라하며 ‘고된 삶’ 느껴본 알바들

  • 기사입력 : 2022-10-05 2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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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어시장에서 처음 일할 곳은 생물생선부터 제수고기까지 판매하는 생선가게입니다. 고순덕(71) 사장님이 친정어머니와 이 자리에서 횟집을 함께 했던 곳이어서 이름을 ‘모녀상회’로 지었다는데요. 지금은 따님이랑 같이 일하고 계셔서 이름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게 앞 마산시농협 남성동지점은 구마산어선창이 있던 자리.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가게를 계약한 37년 전에는 앞이 바다였던 겁니다. 매립이 되고 1991년 농협이 생기면서 바다를 끼지 못하게 되자 업종을 횟집에서 생선가게로 바꾸셨다고 합니다. 가게 한 곳에서도 마산어시장 역사가 읽히네요.

    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로 마산어시장 알바에 나선 이슬기(왼쪽) 기자와 이아름PD가 민어조기 손질법을 배우고 있다.
    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로 마산어시장 알바에 나선 이슬기(왼쪽) 기자와 이아름PD가 민어조기 손질법을 배우고 있다.

    ◇마산어시장 알바생의 생선가게 데뷔전

    10:00 첫 알바 시작. 이아름PD와 제게 일을 가르치고 이야기를 들려주실 모녀상회 사장님, 사장님 따님이자 사수가 되어주실 주미선(47) 선배님께 마산어시장 방수앞치마+팔토시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저희도 방수앞치마를 몸과 마음에 두르고, 속장갑-방수팔토시-고무장갑 순으로 무장 후 장화를 신으니 어시장에 출근했음이 실감납니다.

    10:30 첫 일거리는 고무 대야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민어조기들 배를 따는 것. 40년 경력 사장님은 여러 종류 중 입이 뾰족한 이 친구들이 구우면 쫄깃해 맛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시며 손질 시범을 보이십니다.

    “칼을 누파서(눕혀서) 비늘을 울로(위로) 쳐야 돼. 칼 끝을 딱 배밑 지느러미까지 대고 힘을 살짝 줘서 가르고 빼(뼈)가 느껴질 때 한 번 더 힘을 주면 된다. 밑에 수놈들은 기름 같은 게 있거든 그것까지 살살 긁어내야 깔끔타. 아가미는 왼손가락 두 개 넣어서 널판(넓힌) 다음에 오른 손가락을 넣어서 안에 잡다한 걸 잡아 빼뿌(빼 버려), 옳지.”

    맨손으로 생선을 잡지도 못하는 아름PD는 속장갑과 빨간 고무장갑을 덧댄 힘으로 겨우 고기를 부여잡고 손질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부푼 창자가 꺼져 물컹해지기라도 하면 촉감이 이상하다며 사색이 되고, 잘못 손질해서 생선들의 입이 잘려나가기도 합니다. 살면서 생선 배를 갈라보기는 처음인 저도 서투르기는 마찬가지. 조기 속을 여러 번 긁고, 사장님 속도 긁어 댑니다. 애꿎은 비늘만 옷과 머리에 튑니다. 몇 번의 시범을 봐도 왜 제가 하면 고기도 칼도 길을 잃는 걸까요. 상품에 흠집 내는 일을 계속할 수 없으니 이내 손질된 조기를 씻는 업무를 배당받습니다. 배 가른 민어조기의 뼈를 솔로 빠르게 훑어내리며 핏물과 내장을 깔끔하게 제거하는 일. 배따기 보다야 쉽지만 앉은뱅이 의자에서 상체를 숙여 일하다보니 일한 지 한 시간도 안돼 온몸이 뻐근해옵니다. 스펀지에 비닐을 씌운 자체 제작 ‘모녀상회표 메모리폼’을 깔고 앉았는데도요.

    12:00 손질한 민어조기들은 1시간쯤 물을 빼고 뒀다가 떫은 맛이 적은 국내산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소금양을 맞춰 골고루 뿌릴 재간은 없으니 저희는 소금샤워한 아해들을 상자에 줄세우고, 간을 마친 사장님은 벽에 붙은 메모지에 시간을 적습니다. “인자(이제) 12시 30분이니까 2시 30분.” 딱 2시간 맞춰 간을 해야 짜지 않고 맛있다네요.

    모녀상회 고순덕 사장이 판매용 생선을 정리하고 있다.
    모녀상회 고순덕 사장이 판매용 생선을 정리하고 있다.

    ◇삶 잡아챈 두 손가락

    12:20 점심 먹으려 속장갑을 벗은 사장님 맨손을 보고 놀랍니다. 오른손 둘째, 셋째 손가락이 갈고리마냥 왼쪽으로 휘어져 있고 마디마다 왕구슬이 박힌 듯 부어올라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인지 놀라 손을 잡아봅니다.

    “아가미랑 내장 빼내느라고 그렇지 뭐. 수술하려고 했는데 의사가 하면 더 안 좋대. 수술하고 나서 어디 부딪히면 쉽게 부러지고 한다고. 약 묵고 하면 크게 아프진 아네(않아) 괜찮아.

    생선 몇 마리를 낚아 채야 손이 장비로 변할까요. 한시간 남짓 손질에도 몸이 힘든데. 40년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진 일주일 일과를 들어보면 그 고됨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새벽 2시에 일나지(일어나지). 씻고 2시반에 나오면 부산과 제주에서 생물을 갖고 오는 도매상들이 있거든. 살 물건(생선) 보고 와서 3시 40분쯤에 가게 도착해서 정리하고 문 열고. 일요일은 물건을 안하니까 쪼깨(조금) 더 잔다.”

    이슬기 기자가 40여년간 생선 손질을 하다 검지와 중지가 한쪽으로 휘어져버린 고순덕 사장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40여년간 생선 손질을 하다 검지와 중지가 한쪽으로 휘어져버린 고순덕 사장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알바들이 잠자는 시간에 사장님의 하루가 시작되지만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은 오후 5~6시. 집 나선 지 15시간이 넘어섭니다. 저녁 먹고 아픈 팔다리를 공기 마사지기와 찜질로 달래다 8시에 잠을 청한답니다. 그래도 힘든 건 크게 없었고, 손님들이 여기 생선 맛있게 먹었다 하면 뿌듯하고 좋았다는 말씀에 따님이 성급히 부연합니다.

    “어떻게 안 힘들겠어요, 저도 7년 정도 했지만 엄청 힘들어요. 팔다리도 아프고, 추위로 고생해서 다들 동상도 있고. 동상이 한 번 걸렸던 곳은 간지러움으로 애먹거든요.”

    필요없는 부산물을 거침없이 솎아내고, 막힌 운을 스스로 뚫어내며 삶을 잡아챘을 사람. 알바 둘은 굽은 손가락들이 인생 선배가 몸에 새긴 훈장처럼 멋져 보였습니다. 특별한 손에는 손톱에 올린 분홍 반짝이 젤네일이 잘 어울렸습니다.

    이슬기 기자가 손질된 생선을 냉동고에 걸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손질된 생선을 냉동고에 걸고 있다.

    ◇어시장 생선가게를 찾는 사람들

    13:35 태풍 직후라 고기가 없고, 추석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이 적은 날입니다. 사장님은 마산어시장에서 장 볼 때의 단점으로 꼽히는 호객행위를 안 하고, 구매여부와 상관없이 가격도 친절히 알려주십니다. 마음을 내려 놓고 장사를 해야 손님도, 사장님도 편하다고요. 직장인들이 평일 낮에 장보긴 어려우니 60대 이상 어른들이 주 고객입니다. 이날 생선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버스를 타고서라도 마산어시장에 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생선을 판매하고 있는 알바들.
    생선을 판매하고 있는 알바들.

    “여기가 아무래도 생선이 신선하고 종류도 다양하죠. 다른 시장보다 훨씬 싸기도 하고요. 요새 물가가 너무 올라서 좀 멀어도 오게 되네요.”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또 있습니다. 도매상에서 고른 생선을 배달해주는 분, 이불을 팔러 오신 분, 상한 생선을 사료로 쓰기 위해 수거해 가시는 분, 길 건너 가게까지 이곳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특히나 오늘은 평소보다 가게가 북적이니 관심이 더해졌지요. 사장님은 들른 사람마다 커피를 권하며 안부를 묻고, 주 선배님은 새로운 알바생이라며 저희를 소개합니다. 역마다 정차하는 기차처럼 오가는 어시장 사람들은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해서 어시장의 현실을 직시하고, 각자 생각하는 발전 방향을 내놓기도 합니다. 사장님에겐 이렇듯 시장 사람들이랑 만나는 것이 삶이고 즐거움입니다. 한가한 날을 골라 시장에서 친한 분들과 여행 다녀오시는 것을 좋아하고요. 마산어시장에 켜켜이 쌓인 역사에는 어시장 상인들간의 끈끈함도 있을 것입니다.

    “니 얼마나 팔았노, 이런 거 안 묻거든. 스트레스일 수도 있으니까 안 하지. 우리는 비빔국수 해 먹고, 기제사 지내면 나물 다 들고와서 같이 제삿밥 비벼먹고 하지. 우리 제사 10월 초에 있으니 제삿밥 먹으러 오니라(와라).”

    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로 마산어시장 알바에 나선 이슬기 기자와 이아름PD가 생선가게에서 고순덕 사장과 함께 생선 손질에 앞서 화이팅하고 있다.
    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로 마산어시장 알바에 나선 이슬기 기자와 이아름PD가 생선가게에서 고순덕 사장과 함께 생선 손질에 앞서 화이팅하고 있다.

    ▶지역자산 기록 보고

    손님께 ‘아까’라는 생선을 봉지에 넣어드리다 손가락이 따끔했습니다. 몸이 붉어 ‘빨간고기’, ‘적어’로 불리기도 하는 이 생선은 원래 가시가 날카롭기로 소문나 있답니다. 지난 2014년 출간된 성윤석 시인의 시집 ‘멍게(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적어’라는 시에 적힌 내용입니다. 이 시집은 시인이 마산어시장에서 잡부로 일하며 보고 들은 물고기와 사람들 이야기를 적어낸 것인데요, 220년 전 마산 지역 물고기를 기록한 도감인 ‘우해이어보’처럼 물고기 이름이 시의 제목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 말고도 고등어와 임연수, 명태, 가자미, 장어와 상어도 시집에 있습니다.생선가게에서 일하고 나면 시집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성윤석 시인이 마산어시장에서 일하며 써낸 시집 '멍게'.
    성윤석 시인이 마산어시장에서 일하며 써낸 시집 '멍게'.

    적어

    -성윤석

    고등어는 파랗고 적어는 빨간

    고기다 좌판 위에 나란히

    깔린 고등어와 빨간고기 빨간고기는 아까라기도 하고

    눈볼대라고도 하고 적어라고도 하는데 냉동된 빨간고기의

    가시는 날카로운 창과 같아서 경력 수십 년 된 직원들도

    손대기를 주저한다 대체로 손님들은 빨간고기 주세요, 해서

    빨간고기다 나는 떠나온 서울에서 사람에게도 빨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본 일이 있다 사상이라는 말엔

    원래 빨간색이 흐르고 있을까 철학은 흰색이고 시는 회색일까

    별은 노랑이고 죽음은 검정이고 슬픔은 주홍일까 바다는

    파랑으로 하양을 만들고 또 덮친다 당신은 무슨 색인가

    파란고기인 고등어를 칼로 손질해보면

    안다 파란 고등어의 피가 빨갛게 철철 흘러내리는 것을


    글=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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