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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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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돈은 좋은데 네 돈은 싫어- 신혜영(작가·도서출판 문장 대표)

  • 기사입력 : 2022-09-07 19: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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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7분 라디오 교통정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시각, 3분만 더 꼼지락 대면 밤 12시였다.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핸드폰과 밀애를 즐겼다. 눈요깃거리 기사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다 묵직한 한숨이 툭 터져 나왔다.

    서울 사는 A씨가 자살을 했단다. ‘오죽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렇게라도 끝이 났으니… 이젠 마음이 좀 편하겠는걸’ 싶기도 했다. 기자는 짧은 분량이 못내 아쉬웠는지, 사회적 이슈를 던지고 싶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어조로 기사를 이어갔다. 자살률 1위 불명예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38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는다는 불편함을 던지고선 급히 자리를 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암 사망률은 얼마나 될까? 서둘러 검색을 하던 나는 벌떡 일어나 침대 모서리에 앉아 엄지손톱을 깨물며 핸드폰을 노려봤다. 무려 185명이었다.

    엄마는 암에 걸렸고 수술을 했다. 분명 걸쳤지만 벗은 것 같은 수술복 한 장만 걸치고 얼음판 같은 수술대에 누워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수술은 모든 순간이 흉측했다. 차가운 복도… 불쾌한 소독약 냄새… 수술방의 그 모든 것들은… 회색빛이었고 잘 갈린 식칼 같았다. 나는 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암에 걸렸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됐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암에 걸린다는걸, 암은 잘못된 식습관이 아니라 슬픔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눈치채 버렸다. 슬픔은 독이 되고 독은 곧 암이었다. 암은 또 다른 슬픔을 낳고 무기력이 반복되면 마침내 백기를 든다. 뚜… 뚜… 뚜….

    죽음이 무섭진 않았지만 수술대는 두려웠다. 암만은 걸리지 않아야겠다는 이상한 다짐을 했다. 슬픔을 도려내야겠어. 그렇게 찬찬히 치유의 글쓰기를 이어갔다. 아픔이 내 몸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몰라 한참을 들여다봤다. 기억을 소환하고 글을 썼다. 같은 내용의 글을 쓰고 또 썼다.

    기억의 왜곡인지 마음의 굴절인지 같은 사건은 쓸 때마다 달라졌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글을 통해 암세포는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밥을 먹어도 허기졌던 삶이 달라지고 있었다. 입금은 언제나 감사하지만 암보험 네 돈만큼은 사양하겠어.

    신혜영(작가·도서출판 문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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