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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태풍- 조고운(정치부 차장대우)

  • 기사입력 : 2022-09-05 19: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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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후 도착한 집은 깜깜했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고, 전화기도 불통이었다. 바닷물로 사방이 둘러싸인 아파트 안에서 양초의 불빛과 아파트 안내 방송에 의지한 채 숨을 죽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물바다 위 떠다니는 크고 작은 물체들, 창문을 뒤흔드는 비바람 소리에 불안한 긴긴밤을 지새웠다. 그날 밤, 우리 동네는 곳곳이 잠기고 무너지고 깨졌고, 많은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실제 목숨을 잃었다. 2003년 9월 12일 밤 태풍 매미의 기억이다. 그날 이후 필자는 태풍 예보를 들을 때마다 그날 밤의 공포와 참담함을 떠올린다.

    ▼인류에게 태풍은 불청객이다. 물론 바닷물을 뒤집어 해양과 대기를 정화하고, 적조를 해결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폭퐁우로 생명을 빼앗고 재산에 피해를 미치는 태풍은 예나 지금이나 두려운 존재다. 태풍에 처음 이름을 붙였다는 호주 기상예보관들이 태풍의 이름을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으로 작명한 것도 이러한 공포심 때문일 것이다.

    ▼2002년 태풍 루사로 209명, 2003년 태풍 매미로 119명, 2004년 태풍 메기로 7명, 2016년 태풍 차바로 6명. 최근 20년간 태풍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숫자다. 지난 4일 태풍 힌남노 예상 경로를 브리핑한 이광연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이 숫자를 나열하며 “이 숫자들 하나하나에 많은 사람의 슬픔과 회한이 담겨있다. 슬픔과 회한이 다시 찾아오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태풍 힌남노의 북상 소식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태풍안전행동요령을 미리 숙지하고, 이를 따르는 일이 우선이다.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부를 챙기는 일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태풍 전후로 누군가를 걱정해 그의 안부를 챙기고, 나를 걱정하는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태도, 그 다정한 마음들이 결국 이 무시무시한 태풍의 위기를 견뎌내는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고운(정치부 차장대우)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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