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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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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턱- 황문규(경남도 자치경찰위원회사무국장)

  • 기사입력 : 2022-09-01 19: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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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전에 서울에서 만난 독일인 친구가 거리를 걷다 문득 ‘한국의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경계지점에 있는) 둔턱은 왜 이렇게 높냐’고 물었다. 살면서 한 번도 둔턱이 높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그 물음은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 친구의 질문은 한국의 둔턱은 보행 중 잠시 한눈을 팔다보면 발을 헛디뎌 넘어질 정도로 높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독일에 비해 우리나라의 둔턱은 확실히 높아보였다.

    둔턱의 ‘턱’은 본래 ‘평평한 곳의 어느 한 부분이 갑자기 조금 높이 된 자리’를 의미한다. 일상에서는 흔히 문턱으로 많이 사용된다. 문턱은 비유적으로 어떤 일이 시작되거나 이루어지려는 단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래 문 안과 밖의 경계를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방마다 문턱이 있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한눈을 팔고 무시하는 순간 발가락을 부딪혀 눈물을 쏙 빼놓게 했던 것이 문턱이었다.

    경계는 경계인데, 그렇다고 경계(警戒)해야 할 정도로 높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과거 권위주의가 일상화된 시절에 문턱은 누구나 쉽게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 시절의 문턱은 안의 나와 밖의 너를 구분함은 물론, 안에서 하는 비밀스런 얘기가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일테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문턱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성벽처럼 완고한 직선’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문턱은 민주화 때문인지 몰라도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게끔 낮추는 추세다. 은행대출 문턱, 국회 문턱, 법원 문턱 등을 낮추려고 하지, 높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둔턱도 낮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보행자가 대기하는 횡단보도에 둔턱을 굳이 사선으로 만들면서까지 설치해놓은 곳이 적지 않다. 누구를 위한 둔턱인지 의문스럽다. 이동에 불편이 있는 장애인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둔턱을 만드는 경계석 하나 놓을 때도 섬세한 행정이 필요한 이유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게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모양이다. 무더위에 찌든 일상에서 벗어났으니 올 가을에는 나의 문턱을 낮춰 보고 싶다.

    황문규(경남도 자치경찰위원회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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