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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례’ 어때요] (4·끝) 조례용어 순화 일괄정비조례

한자어·일본식 조례용어, 쉬운 우리말로 안될까요?

  • 기사입력 : 2022-08-16 21: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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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률과 자치법규는 알기 쉽고 분명한 우리말이나 일상 언어로 사용해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공기관은 차츰 행정용어를 바꿔나가고 있지만, 법률과 자치법규에는 낯선 단어나 표현이 여전히 많다. ‘이런 ‘조례’ 어때요’ 마지막 편에서는 어려운 한자어·일본식 용어, 어문 규범에 맞지 않는 표현 등을 우리말과 일상 언어로 한꺼번에 모두 바꾸는 ‘조례용어 순화 일괄정비조례’를 살펴보고 제안한다.

    경남도의회 전경./경남신문DB/
    경남도의회 전경./경남신문DB/

    이해하기 어려운 조례 용어 남용
    ‘스마트팜·스마트팜 혁신밸리’ 등 영어
    ‘불입’ 등 일본식 한자어 그대로 사용
    번역투 표현도 많아 한국 고유문체 파괴

    ◇어려운 한자어·영어, 번역투 무더기 사용= 지난 10일 행정안전부 자치법규시스템을 통해 경남을 비롯해 전국 광역시도와 기초자치단체의 조례를 임의로 검색해보니 어려운 한자어와 영어, 번역투(외국어 문체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한국인의 언어습관을 훼손하는 문체)가 남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경상남도 스마트농업 육성 조례’를 비롯한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들의 스마트농업 육성 및 지원 관련 조례를 보면 ‘농업의 생산성 향상과 농작업의 질 향상을 위하여 농업의 생산·유통 과정에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한 농업’을 ‘스마트농업’이라 칭하고 있다. 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조성한 농장을 ‘스마트팜(farm)’으로 대부분 지자체가 표현하고 있다. 효율성을 고려해 ‘스마트’를 ‘정보 기술을 접목해 자동화한’으로 풀어 쓰진 않더라도 ‘팜’은 일상에서 쉽게 쓰는 우리말인 농장으로 바꿔 쓸 수 있지만, 대부분 지자체가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스마트팜의 연구 개발 실증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복합 혁신 단지를 ‘스마트팜 혁신 밸리’ 또는 스마트팜 밸리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 충북 제천시·충주시, 경기 동두천시 등 기초지자체는 스마트팜 대신 스마트농장으로, 스마트팜 혁신 밸리 대신 농업복합단지로 순화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관행적으로 한자어를 많이 사용해 내용 이해를 어렵게 하는 조례들도 어지간히 많다. 한 기초자치단체의 시설관리공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보면, ‘수익금은 매일 시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에 불입하여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불입(拂入)은 일본식 한자어로 ‘납입(納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밖에 ‘기록하여 내어 붙이거나 걸어두어서 여러 사람이 보게 하다’는 뜻의 ‘게기하다’도 도내 한 지자체 조례에서 정비되지 않고 있다. 게기하다는 행정안전부가 지난 2017년 전수조사를 거쳐 자치법규에 남아있는 일본식 한자어 23개를 정하고 지자체에 정비계획을 시행할 때 ‘규정(規定)하다’로 바꾸도록 한 바 있지만 여전히 구태의연한 일본식 한자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또 번역투 또는 복잡한 문장이 사용되면서 내용 이해를 어렵게 하는 조례들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등에 관하여’, ‘시행에 관하여’, ‘의원에 대하여’ 등 영어에서 ‘~about’의 번역체 표현이 상당수다. 이 밖에 ‘~에도 불구하고’, ‘~로 인해’, ‘~을 필요로 하다’, ‘~ 중에 있다’처럼 한국 고유 문체를 파괴하고 있는 번역 투 표현도 많이 발견된다.


    자치법규뿐만 아니라 상위법령인 법률에서도 한자어·영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9년 한국법제연구원의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령용어가 어렵다고 느끼는 국민이 85.3%에 이를 정도로 국민의 법령용어 이해도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정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이규민(안성시) 국회의원은 지난 2020년 12월 특별소위원회 구성을 통해 어려운 법률용어를 일괄 개정하도록 하는 ‘우리말글 법률 만들기를 위한 국회 의사절치 임시특례법’을 대표 발의한 바 있지만, 해당 소위원회에서 현재까지 구체적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지자체 곳곳 일괄정비 조례 추진
    수원·광명시, 한자·일본어 등 정비 노력
    충남도의회, 순화 위해 한꺼번에 바꿔
    11대 도의회선 인권침해 용어 등 정비

    ◇일괄 정비 나서는 지자체들 살펴보니= 그동안 더디게 진행된 조례 용어 등의 정비를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지자체들이 조례와 규칙 등 자치법규 일괄 정비에 나서고 있다. 일괄정비란 관련성 있는 자치법규를 함께 개정하는 입법기술을 말한다. 개별 자치법규를 일일이 개정하는 방법 대신 ‘일괄개정 조례(규칙)안’을 만들어 본칙에서 쉽게 개정하는 방법이다. 조례와 규칙을 개별적으로 개정하면서 발생하는 행정력 낭비를 줄이고, 어려운 한자어 등을 우리말과 일상언어로 정비해 시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자치법규를 만들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경기 수원시는 지난 2020년 3월 ‘수원시 어려운 한자어 정비를 위한 일괄정비조례’를 시행했다. ‘상오’, ‘하오’를 각각 오전과 오후로 바꾸고 ‘도과한’을 ‘지난’으로 바꾸는 등 한자어를 순화한 게 일례다. 같은 해 경기 광명시는 ‘용어의 순화를 위한 광명시 조례 일괄정비 조례’를 통해 도과(→ 지남), 미연에(→ 미리), 학·사계(→ 학계와 해당 분야), 사기 앙양을 위해(→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 규정에 의거(→ 규정에 따라), 가격 앙등(→ 가격 오름), 도로 폭원(→ 도로 너비), 해득(→ 이해), 행선지(→ 목적지) 등 조례 67개, 규칙 15개 속에 있는 205건의 어려운 한자 및 일본식 용어, 어문 규범에 맞지 않는 표현을 일괄 정비했다. 지난 2020년 말 경기도도 ‘조례 용어 일제잔재 청산을 위한 일괄정비조례’를 시행한 예가 있다.

    ‘충청남도의회 조례용어 우리말 순화 일괄정비조례’도 눈여겨볼 사례다. 충남도의회는 지난 7월 ‘조례용어 우리말 순화 일괄정비 조례’를 시행했다. 법제처의 ‘알기 쉬운 법령 정비’를 기준으로 삼아 무분별하게 쓰이는 일본어투와 어려운 한자어가 포함된 21개 조례, 5개 규칙 등 297건을 묶어 한꺼번에 정비한 것인데, 외국어·외래어는 물론 번역투 표현까지 바꿨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등에 관하여(→ 등에), 사유가 없는 한(→ 사유가 없으면), 시행에 관하여(→ 시행에), 아니한다(→ 않는다), 의하여(→ 따라), 통보하여야(→ 알려야), 제척(→ 제외) 등이다.

    홍기후 당시 충남도의회 운영위원장은 “공공기관이 한글 사용에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어투와 한자어, 외래어 사용이 남발되고 있다”며 “올바른 우리말 사용 확산을 위해 일괄정비조례를 마련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경남도 관련성 있는 자치법규를 함께 바꾸는 일괄정비를 통해 조례 용어를 순화한 적 있는 만큼 이를 준용해 우리말 순화 일괄정비 조례 마련에 나서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지난 11대 도의회에서 조례의 제명과 조문 속 ‘근로’를 노동으로 일괄 정비(경남도 조례 용어 일괄정비를 위한 조례)한 바 있다. 또 소외계층(→ 취약계층), 강사료(→ 강의료), 우범지역(→ 삭제), 자매결연(→ 친선결연), 주부(→ 여성)으로 정비한 사례(경남도 조례 인권침해적 용어 등 일괄정비를 위한 조례)도 있다. 또 지난해 ‘경남도교육청 조례 장애차별적 용어 일괄정비를 위한 조례’를 통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고 고착화하거나 오인될 수 있는 용어를 일괄 정비한 바 있다. 이 조례를 통해 ‘경상남도교육청 공직자윤리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 등 9개 조례에서 각종 위원회의 위원 해촉사유 중 심신장애·정신장애를 건강상의 이유로 바꿔 장애의 유무가 직무수행능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를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였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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