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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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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효를 생각하다- 배종화(수필가)

  • 기사입력 : 2022-07-26 20: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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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사를 합치거나 아예 없애는 가정이 늘고 있다. 제사는 고사하고 노부모를 누가 모실지, 재산상속 문제 등으로 형제끼리 원수가 되거나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불효의 끝판도 간혹 보았다.

    현시대의 효란 무엇이며 자식의 도리란 어떤 것일까.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극진히 모시고 세상 떠나면 애통하여 무덤 앞에 초막을 짓고 삼년상을 치렀다는 말은 전설이 된 지 오래다. 필자 역시 이 일에 자유롭지 않아 이런저런 일 떠올려가며 자꾸 변명을 늘어놓는다.

    일 년에 두 번, 친정 부모님 제사 때면 갈등이 많았다. 무엇보다 장남이 멀리 수원에 살고 있어 당일 다녀오기 어렵고, 무리해서라도 참석하고 보면, 왠지 큰올케에게 미안했다.

    또 그날이 아니면 조카나 손자 얼굴 보기 어려우니, 남이나 마찬가지 아닐까도 싶었다.

    몇 해 전 아버지 제삿날, 어머니 제사도 같은 날 함께 모시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의견을 내놓았다. 다른 형제는 수긍했으나 장남은 펄쩍 뛰었다. 기껏해야 일 년에 두 번인데 이걸 줄이는 불효가 어디 있느냐는 거였다. 그도 그럴 만했다. 친정 장남은 딸 셋 다음으로 얻은 아들이다. 부모님은 금이야 옥이야 공들여 키웠다. 어머니는 끼니때마다 거친 꽁보리밥 속에서 용케 흰쌀밥만 골라 떠주고, 딸들에게는 구경도 안 시켰던 달걀찜까지 만들어서 먹였다. 그마저도 입에 맞지 않는다고 투정하면 외가에 업고 가서 외할아버지 밥상에 앉힐 만큼 끔찍이 여기셨다.

    겨우 걸음마를 하게 되자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친구가 되어주었다. 구슬치기 달리기도 같이하고, 나무를 깎아 팽이나 자치기를 만들어 함께 놀아주곤 하셨다. 씨름을 가르치면서 일부러 져주기도 했는데, 이겼다고 좋아하는 꼬맹이에게 “인자 우리 장남 다 컸다”라면서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하셨다.

    사실, 돌아가신 후,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 차리고 제사 지내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형제가 모두 모여 부모님을 기억하고 서로 정을 나누라고 만든 미풍양속이 아닐까. 드디어 친정 장남도 마음을 바꾸었다. 다시금 이 시대의 참된 효를 생각한다.

    배종화(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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