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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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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여항초등학교백년사’ 발간한 홍근표 창원 여항초 총동문회장

“사라져 버린 학교 100년의 기억… 그리움과 역사를 담았죠”

  • 기사입력 : 2022-07-06 21:4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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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6월 25일. 사변으로 인해 신교사 3교실, 승강구 완전 파괴. 교문 앞(서편) 가교사, 교원 주택 2동, 창고 2동 완전 소실. 6·26일 사변으로 인해 휴교’, ‘1969년 11월 25일. 대변 검사 결과 학생들 회충약 복용 실시’, ‘1986년 6월 26일 교내 반공 웅변대회 실시.’

    ‘1960년대 졸업생들은 책 보따리에 운동장의 자갈돌을 주워 구원산 앞의 개울에 갖다 버리고 개울의 모래를 한 보따리씩 채워 들고 오던 일을 거의 모두 기억하고 있다. 운동장 바닥이 돌밭이라 전교생을 동원해 모래를 부어 넣어도 별로 표가 나지 않았다. 광복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심지어 교실에서 공부한 시간보다 일한 시간이 더 많았다는 증언도 있다. 1960년대까지 학생들이 학교의 일을 돕지 않은 해는 거의 없었다.’

    올해 초 발간된 여항초등학교 백년사에 기록된 내용의 일부이다. 책은 당시의 역사와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학교는 그 지역의 역사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정서를 담고 있다. 시골의 학교일수록 학교와 마을의 유대관계가 깊기 마련이다. 학교는 지역민의 삶이 녹아 있고 지역의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홍근표 여항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이 폐교가 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의 여항초등학교 역사와 시대상을 담은 ‘여항초등학교 백년사’를 보여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홍근표 여항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이 폐교가 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의 여항초등학교 역사와 시대상을 담은 ‘여항초등학교 백년사’를 보여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던 여항초등학교는 지난 1999년에 졸업생 감소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폐교된 지 20여 년이 지난 올초 ‘여항초등학교 백년사’가 발간됐다. 학교의 시초가 되는 창동 학교(1919년 설립) 때부터 100주년을 맞은 지난 2019년 학교동문회를 중심으로 발간 작업이 시작돼 자료수집과 집필 등을 거쳐 수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이미 폐교가 돼버린 한 학교에 대해 역사를 기록한 책은 전례가 거의 없다. 교육지원청 등에서 지역단위로 폐교의 역사를 정리하거나 기록화한 사례는 있지만 폐교가 돼버린 한 학교의 역사를 망라한 책은 사례를 찾아보기 드물다.

    책의 집필은 여항초등학교 총동문회장 홍근표씨가 맡았다. 20여 년이 지나 100년사가 나온 이유는 뭘까?

    홍근표 여항초 총동문회장은 41회 졸업생이다. 홍 회장은 1981년부터 칠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교직생활을 시작, 지난 2017년 창원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해 37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는 여항초 설립 100주년이 되던 2019년께 총동문회장을 맡으면서 100주년사 발간을 결심했다. 홍 회장은 “여항초가 폐교될 때 타지에 있던 동문은 폐교 사실도 몰랐다”며 “그동안 학교가 없어졌다고 아쉬워만 할 것이 아니라 100주년 기념과 함께 역사를 정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필 과정에 대해 “학교만의 역사가 아니라 지역의 역사도 따라오는 작업”이라고 했다.

    홍근표 여항초등학교 총동문회장./김승권 기자/
    홍근표 여항초등학교 총동문회장./김승권 기자/

    동문 중에는 일부의 반대도 있었다. 폐교된 지도 오래됐는데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문은 높은 관심을 보였다. 비록 모교는 폐교됐지만, 그 역사마저 점차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동문의 아쉬움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100년사 발간을 위한 동문회 모금에는 당초 목표액의 4배가량인 1억1000여만원이 걷혔다. 동문의 열렬한 지지가 큰 뒷받침이 됐다.

    학교는 없어졌지만, 그 역사는 없어질 수 없는 존재 가치를 지닌다. 홍 회장은 “여항초가 폐교된 지 20여 년이나 지나서 역사를 정리하자고 하는 것은 정말 때가 늦은 일이다”면서도 “어떤 역사라도 그 속에 담긴 정신과 일들은 충분히 기록될 가치가 있으며 더 사라지기 전에 기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문 중에 준비위원으로 8명이 합세해 자료수집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자료를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광복, 6·25 전쟁 등의 역사를 거치며 많은 자료는 소실됐다. 다행히 일부 자료들은 당시 통폐합됐던 진전초등학교에 옮겨져 있었고 졸업대장과 일부 사진들은 교육지원청에 보관돼 있었다. 하지만 여러 폐교 중 사례로 남아있는 자료일 뿐 여항초의 역사를 정리해 보여주는 자료들은 아니었다. 홍 회장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모으고 기록의 퍼즐을 맞춰야 했다. 조합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가령 관련 기관에 사진 자료가 있다 하더라도 일시와 상황이 구체적으로 기록돼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사진의 기록을 수소문하거나 사진의 배경을 유추해 기록의 퍼즐을 맞춰야 했다.

    홍근표 여항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이 폐교가 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의 여항초등학교 역사와 시대상을 담은 ‘여항초등학교 백년사’를 보여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홍근표 여항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이 폐교가 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의 여항초등학교 역사와 시대상을 담은 ‘여항초등학교 백년사’를 보여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조각난 기록 퍼즐을 맞추는 데는 동문이 큰 힘이 되었다. 동문의 증언 또는 각자 가지고 있던 학교 관련 사진 등 자료는 충분한 사료적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졸업생 명부 작성은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교육지원청에 보관하고 있는 졸업대장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열람 자체가 불가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동문의 경우는 각 동기회를 통해 정리가 가능했지만 오래된 졸업생 명단은 수소문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홍 회장은 과거 수상 대장 등 여러 가지 문서들에 남아있는 흔적을 모으고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최대한 명단을 확보했다.

    홍 회장은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자료가 많아도 정리되지 않으면 그 가치를 발휘할 수가 없다. 자료는 제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가진다”며 “흩어져 있는 단순한 명단부터 사진, 서류 등을 모교의 설립에서부터 폐교 때까지 정리했다. 학교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학교의 역사를 만들어 간 동문의 흔적들도 역사로 만들어 두어야 학교는 역사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전국적으로 폐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폐교의 역사가 소실되어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했다.

    그는 “50~60년대 소위 베이비부머 시대에는 학교가 많이 늘 수밖에 없었다. 특히 6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었지만, 당시 국가의 교육 예산은 지금과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지역과 마을에서, 주민들의 도움으로 학교가 설립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주민들의 애정이 강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둘 그런 역사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후 경남의 폐교 수는 582개교다. 전국적으로 전남(834개교), 경북(727개교)에 이어 3번째로 많다. 농어촌 지역이 많은데다 인구의 도심 이동이 가속화된 영향이 크다.

    홍 회장은 “폐교가 될 때 졸업대장 등 주요 자료를 제외한 나머지 자료들은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나마 남아있는 자료들은 파편화 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수많은 학교들의 역사마저 죽어버리게 할 수 있느냐”고 했다.

    홍근표 여항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이 폐교가 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의 여항초등학교 역사와 시대상을 담은 ‘여항초등학교 백년사’를 보여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홍근표 여항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이 폐교가 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의 여항초등학교 역사와 시대상을 담은 ‘여항초등학교 백년사’를 보여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그는 폐교의 자료에 대한 정리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홍 회장은 “자료의 기록과 보관도 중요하지만 이를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역사가 된다”며 “파편화돼버린 폐교의 역사를 학교별로 묶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을 동문회 등 민간의 영역에서는 엄두를 내기 쉬운 일도 아니고 하더라도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각 폐교의 역사를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교육 당국에서 어느 정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100년사 발간으로 세상에 나와 빛을 보게 된 여항초는 기억의 고리를 이으며 다시 태어났다. 홍 회장은 “학교를 세우기 위해,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교육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심신을 바치며 노력한 선배의 정신을 후배, 후손들은 기억해야 한다”며 “여항초는 그냥 하나의 학교가 아니라 우리 동네의 깊은 역사와 함께했고, 우리 동네 사람들의 애국, 애향 정신의 중심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훈 기자 y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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