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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14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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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부자 氣받기- 삼성·LG·효성 창업주 이야기 3부 (19) 구인회의 언론사 경영

[3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LG 성장 발판’ 진주·부산서 지역신문 인수·경영

  • 기사입력 : 2022-06-30 21: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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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때 부산서 승승장구했던 국제신문
    4·19, 5·16으로 경영난 겪자 구명운동 펼쳐
    1964년 구인회가 인수 후 대대적 확장
    1970년대 전국 최고 지방신문 명성 날리다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 따라 폐간 시련

    1909년 창간 우리나라 첫 지방지 경남일보
    폐간·휴간·정간 반복하다 경영난으로
    1969년 7월 럭키금성그룹에 주식 양도
    구자경을 사장으로 5년간 경영하다
    의사 김윤양에게 전부 인계 후 물러나


    구인회는 1964년 5월, 부산의 국제신보(현 국제신문)를, 1969년 7월에는 진주의 경남일보를 인수했다. 구인회 포목 상점은 진주에서, 락희화학과 금성사의 출발지는 부산이다.

    지역에서 성장한 기업은 지역을 위해 유·무형의 사회적 참여도 필요하다. 구인회가 지역 언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1980년 11월 25일 언론 통·폐합으로 폐간된 국제신문의 1면 머리기사./부산민주공원/
    1980년 11월 25일 언론 통·폐합으로 폐간된 국제신문의 1면 머리기사./부산민주공원/

    # 부산에서 국제신문의 탄생

    1945년 해방이 되자 한국 최대의 해양도시 부산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많은 신문사가 설립되었다. 1945년 7개를 시작으로 1948년까지 모두 12개 언론사가 창간되고 활동을 했다. 하지만 미 군정청의 통제와 수익경영의 어려움으로 창간 4년 이내 대부분 폐간되거나 인수합병 됐다. 이 중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산의 양대 신문으로 성장했다.

    기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고성 출신 김형두가 1947년 9월 1일 ‘동아산업신보’를 설립, 운영하다가 주간지 ‘수산신문’과 통합해 ‘산업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것이 국제신문의 시작이다. 1950년 8월 19일 사명을 ‘국제신보’로 바꾸었다가 1977년 6월 1일 ‘국제신문’으로 변경했다.

    # 구인회의 국제신보 인수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가 부산에 있었기 때문에 부산에서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지는 모두 부산에서 전송을 받아야 하는데, 전쟁으로 인해 통신시설이 파괴되거나 마비돼 전송이 어려웠다.

    국제신보는 부산에 본사를 둔 까닭에 국내는 물론 해외 통신에도 뉴스를 제공하는 신문사가 되어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4·19와 5·16의 영향으로 경영 어려움과 재정 악화를 많이 받았다. 국제신보가 지속적인 성장은 고사하고 유지조차 힘든 과정을 겪고 있을 때 부산지역 상공인들이 국제신보 구명운동을 펼치며 부산에서 락희화학과 금성사를 경영하던 구인회에게 인수를 부탁했다.

    1964년 5월 11일 구인회는 국제신보를 인수하고 대대적인 확장을 꾀했다. 당시 지방지로서는 취재용 경비행기도 도입하고, 동양텔레비전 부산방송국 TV방송에 국제신보에서 취재한 뉴스도 보도됐다. 럭키금성그룹이 경영하는 국제신보는 1970년대는 부산지역 양대 신문이자 경쟁사였던 부산일보를 능가하는 전국 최고의 지방신문으로 명성을 날렸다.

    1977년에 제호를 ‘국제신문’으로 바꾸어 다시 한 번 도약을 준했다. 그러나 부산에서 가장 큰 사세와 발행 부수를 자랑하던 이 신문은 1980년 11월 언론기관 통폐합에 따라 12월 25일 ‘부산일보’에 흡수돼, 지령 10992호로 폐간되는 시련을 다시 겪었다.

    ‘이 신문이 마지막 국제신문입니다. 독자여 안녕. 창간 33년 2개월 25일. 지령 제 10992호로 종간하다. 파란만장의 시대에 역사의 기록자임을 확신한다’. 국제신문 5층 편집국 입구 액자에 걸린 폐간 전 신문(1980년 11월 25일 자) 1면의 머리기사 제목이다. 1989년 2월 1일 복간되어 2022년 7월 1일 현재 2만1099호를 발행한 대표적인 지역신문이다.

    경남일보는 1909년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일간지이다. 1969년 7월 럭키금성그룹이 주식을 양도받아 5년간 경영했다. 사진은 창간호 1면 내용의 일부./경남일보/
    경남일보는 1909년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일간지이다. 1969년 7월 럭키금성그룹이 주식을 양도받아 5년간 경영했다. 사진은 창간호 1면 내용의 일부./경남일보/

    # 진주에서 경남일보의 탄생

    1909년 10월, 경남 진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지 경남일보가 창간됐다. 1920년에 창간된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보다 10년이나 더 빠르게 창간된 신문이다. 1909년 6월 울산 출신 대지주 김홍조와 경남지방 기업인, 실업인들이 진주에 모여 회사명을 ‘경남일보 주식회사’로 하고 신문을 발행하기로 했다. 8월 19일 대한제국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10월, 초대 사장에 김홍조, 주필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 사설로 민족의 울분을 토로한 장지연을 모셨다. 1909년 10월 15일, 경남일보 창간호 8000부를 발행해 대한민국 신문사의 새 역사를 세운 날이다.

    # 구인회의 경남일보 인수

    경남일보는 일제강점기 강제로 폐간되는 아픈 역사도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1946년 3월 1일 경제인들이 주축이 되어 다시 발행을 했지만 1949년 3월 경영난으로 또 다시 휴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간 41년이 지난 1951년 1월 13일이 되어서야 지령 1000호를 돌파하였으니 그동안의 휴간, 정간 등 고난의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설창수, 최재호, 박세제로 경영진은 바뀌었지만 경영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경남일보 주식의 절대량을 보유하고 있던 최재호 회장이 더 이상 경영난을 타개할 방법이 없자 구인회 회장을 찾아갔다. 1969년 7월 최재호는 본인이 소유하던 주식 전부를 구인회가 경영하던 럭키금성그룹에 모두 양도했다.

    구인회가 인수한 경남일보는 구자경을 사장으로 등기하면서 새 출발을 했다. 약 5년간 경남일보를 경영한 구자경은 1974년 6월 진주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 김윤양에게 전부 인계를 하고 경남일보 경영에서 물러났다.

    # 김윤양, 김흥치 부자의 복간 추진

    언론 통폐합 정책으로 김윤양이 경영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일간지 경남일보도 역사와 전통이 사라지는 불운을 피하지 못했다. 1980년 11월 25일자 폐간호를 내고 마산의 경남매일(현 경남신문)에 합병됐다.

    그 후 폐간 당시 주주였던 김윤양 병원장은 복간이 가능해지자 진주시 동성동 윤양병원에 ‘주식회사 동명’ 경남일보 복간사무실을 설치했다. 상호를 ‘주식회사 경남일보’로 바꾸고 21기이자 복간 1기 수습기자를 공채하는 등 연내 복간을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경남일보’의 제호를 문화공보부에서 승인하지 않아 1989년 11월 25일 ‘신경남일보’라는 제호로 복간해 마침내 최초의 지방신문 역사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윤양 사장에 이어 아들 김흥치 병원장이 신경남일보 사장에 취임한 후 복간작업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99년 12월 20일 문화관광부에 제호 변경을 신청, 접수를 마침으로써 2000년 1월 1일부터 원래 이름인 ‘경남일보’로 새 출발하게 됐다.

    정간, 폐간, 창간과 복간을 거친 경남일보는 현재 진주시 상대동 남강변에 독립된 사옥을 가지고 있다. 2022년 7월 1일 현재 1만9686호를 발행했다.

    1946년 창간된 경남신문은 현재 경남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성장했다./경남신문/
    1946년 창간된 경남신문은 현재 경남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성장했다./경남신문/

    # 마산에서 경남신문의 탄생

    경남신문은 창원에 본사를 둔 경남을 대표하는 최대 일간지이다. 1946년 3월 1일 마산에서 남선신문으로 출발해 1969년 3월 경남매일로, 1981년 1월 ‘경남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0년 언론통폐합 때 진주의 경남일보를 흡수 합병했다. 창업주 이야기 연재를 하고 있는 필자도 경남신문과 간접 인연이 있다. 20여년 전 ‘문화의 향기 - 흔적’ 기획 기사를 취재해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김다숙 기자가 필자의 가족이다. 지금은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다.


    <구인회의 한마디>

    돈은 있을 때 아껴야 한다. 돈이 없을 때는 아끼려야 아낄 것이 없어 모이지 않는다.

    이래호(전 경남개발공사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전 경남개발공사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전 경남개발공사관광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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