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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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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몽(夢)-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공감소통이사장)

  • 기사입력 : 2022-06-22 2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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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직을 앞둔 선배 기자분의 글 칭찬에 모골이 송연하다. 글은 신문에 기고하는 이 글을 말한다.

    단순한 입보시일지언정 허투루 지나치기에는 부담스럽다. 글이란 것이 침잠하는 의식의 바닥에 부유하는 사유의 조각들을 눈이 작은 채로서, 모래를 채취하듯 거르고 또 걸러 활자화하는 것이고 보면, 허접한 내 삶의 궤적이 드문드문 묻어나게 마련이다. 썩 유쾌한 일이 못 되는 이유이다.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친구의 권유로 시작했다. 7주에 한번 기고하니 시간 부담이 없고, 1년만 쓰면 되니 그 또한 금방 지나가고, 의료·보건 분야 종사자가 없으니 적임자라는 등의 꾐에 넘어갔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칼럼 기고는 3년 차다. 숙제는 이어진다. 잘 쓸 때까지 하라는 경책 일수도 있고,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 일수도 있다. 이번에 기고하는 글이 저번과 별반 차이가 없고, 다음에도 유사한 톤의 내용인 것은 나의 식견의 한정성과 내 경험의 제한성에서 기인된 것이다.

    만물의 이치가 모두 인간 본성에 구비돼 있다고 한다. 인간이 존재 그 자체로서 소우주로 불리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 우주 만물의 이치를 머금고 있음에 연유한 것이리라. 과연 그럴까? 나도 그럴까?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내가 나를 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불필요한 성급함이 드러나고, 대인 관계에서 곧잘 나타나는 용렬함은 깨어진 용기로서, 만물의 이치를 담는 그릇으로 부적합한 것이다. 인간이 선하게 태어나든 악하게 태어나든 그 품성이 한 생애에서 완벽함을 이루기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할지 모른다.

    은하계의 밤하늘에 수없이 빛나는 별들이 빅뱅 이후 100억년 넘는 시간 속에서 현재의 모습을 보는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영겁의 시간 속에 마침표 없이 계속되는 윤회의 굴레에서, 되새김질하며 형성되는 자아가 작금의 모습이라면 ‘오버’하는 것일까. 과제는 계속된다.

    걷는 일은 일상이고, 걷기 운동은 다목적용이다. 직립 보행은 우선 오랜 친구인 당뇨병 억제에 용이하다. 걷는 일이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 혈당 수치를 낮추는 것이다. 다음은 생각을 간편하게 정리한다. 마음에서 운무처럼 피워 내는 다양한 번민과 망상을 정제하는 일을 도와준다. 조직생활에서 가정사에서 대인관계에서 파생되는 갈등과 스트레스라 불리는 일들을 순화시킨다.

    그다음은 마음의 비움이다. 이 일은 채움에 익숙하고 부가 만능인 세상에서 역설이다. 비움은 멈춰야 할 때 설 줄 아는 적극적 행위이고,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는 능동적 행동이다. 걷고 또 걷다 보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다. 별 잡다한 생각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여기서부터 자신의 내면을 지켜보면 비움의 작은 입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에 따라 성찰의 정도에 따라 문의 크기가 달라서 진입하는데 편차는 있다.

    산책을 나선다. 병원 건너 농로를 따라 걸으면 둑방 위에 올라선다. 지대가 툭 트여 시원하다. 모내기를 마친 논들은 마치 잔디를 가지런히 심은 듯 연초록이 푸근하다. 병원 뒤 명산이 우뚝 섰고, 북면 온천 뒤 마금산이 유연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동편에는 달달박박 수행처인 백월산이 강인한 몸매를 드러내고, 남쪽에는 창원 시민의 휴식처인 천주산이 하늘을 떠 바치듯 서 있다.

    명호제를 지나는 제방에는 사태진 샛노란 금개국이 신동제에 이르기까지 동행한다. 나는 늘 이 길을 걷는다.

    점심 공양에 곁들인 곡차가 과했을까. ‘밸런타인 30년’보다 훌륭한 그 낯 술 말이다. 숙면이 달았다. 얼마나 잤는지 두런두런 소리에 눈을 뜬다. 방안에 유리창이 없다. 순간 먼 기억이 소환된다. 다행히 딱딱한 철제 의자는 아니다. 지금은 낮인가 밤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모처럼 단잠에 꿈이 사납다.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공감소통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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