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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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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느림의 미학, 문화동방견문록- 이기석(마산합포구 문화동 주민자치회장)

  • 기사입력 : 2022-06-16 20: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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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를 유럽에 알린 마르코 폴로의 원나라 여행 일대기 ‘동방견문록’을 읽고 있다가, 문득 언제나 갈 수 있는 문화동 일대를 소개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요즘과 같이 지친 현대인에게 느림을 지키며 여유로운 우리 동네에서 잠시 쉬었다 가라고 권하고 싶다. 유행을 타지 않은 도심 속 동네 문화동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 없는 유행을 타지 않는 동네다.

    능선 굽이굽이 무학산 만날고개에서 도시 전경을 한눈에 담다 보면 빽빽한 아파트보다 제각각 개성을 갖춘 주택들이 들어와 정겹다. 동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창원천은 연애다리로 유명하다. 봄에 만개하는 벚꽃은 아는 사람만 아는 명소다. 이 일대의 지명을 사쿠라마찌(벚나무동네)라 불렀는데 창원천의 맑은 물 위로 떨어져 흘러내려 가는 낙화가 일품이니 봄에는 꼭 구경해 보라.

    주택가를 벗어나면 푸짐한 각종 해물 안주가 한상 통째로 나오는 통술거리가 나온다. ‘술이 오래갈까 안주가 오래갈까’라는 주당들의 짖궂은 농담 속에 통술집 아지매의 푸짐한 안주 공세는 끊이지 않는다. 문화동은 계획된 격자상으로 일제 강점기의 상가 및 건물들이 아직도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구한 말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러시아영사관과 일본영사관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도심에 있는 마산헌병분견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헌병들이 사용했던 건물로 우리 민중들과 독립투사분들이 겪은 고초를 떠오르게 한다.

    문화동주민센터 뒤 청계공원에는 신동공사터 비석도 있다. 신동공사는 개항 당시 외국인 거류지에 관한 일을 하던 곳으로 우리나라가 개항하면서 국권이 침해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흔적이다. 이처럼 문화동은 느리면서도 아픈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한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것에 편의를 더하는 재생사업도 추진하는 문화동은 통술거리 등 구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준비 중이다.

    전통 양조방식을 지키는 문화양조장 프로젝트, 창원천 주변의 해양 벚꽃길 인프라 사업은 물론, 청춘지역공헌센터와 청춘가로도 만들어 ‘쉼’이 제일 필요한 젊은 사람들이 오가며 쉴 수 있도록 구상 중이다. 상인들과 주민들은 지역협동조합도 어서 빨리 만들고 해서 쉼터로서 문화동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단다. 가끔 세상이 빨리 변해 힘들다면 느림이 있는 우리 동네를 한번 걸어 보는 게 어떨까….

    난 느림이 있는 문화동이 좋다.

    이기석(마산합포구 문화동 주민자치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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