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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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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아버지의 등 - 하청호

  • 기사입력 : 2022-04-28 08: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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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 아버지의 ‘등’은, 가장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상징이다. 아버지 등의 ‘땀 냄새’는 삶의 고단함을 견디며 아버지로 살아야 하는 사내의 ‘속울음’이다.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묵묵히 살아갈 뿐, 슬픔조차 드러낼 수 없었던 우리들의 아버지.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살았던 아버지가 그리운 시절이다.

    나이 들어 자식 따라 꽃 피는 무렵이면 꽃 구경을 다녔던 내 아버지. 화사한 꽃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땅만 보고 걸으셨다. 아버지의 어깨는 야위었고 등은 굽어 있었으며, 걸음은 느려서 자꾸 뒤처졌다. 어머니가 꽃 사진을 찍느라 머뭇거리면 아버지는 저만치 앞서가 사람들 사이에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꽃 구경을 나가면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깨가 굽은 채 앞서가는 할아버지를 보면 그 모습이 아버지를 닮아서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 하고 부르며 달려가 그 넓은 등에 업혔던 기억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다가오는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더 그립다. 늙으신 아버지에게,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고 편히 웃어도 울어도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시간이라도 가졌더라면. 울음조차 감추고 살아간 아버지. 땀내 나는 등이라도 꼭 안아보고 싶은 그리운 아버지. 연두의 계절이다.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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